관심있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일단 구입한다. 당장은 시간에 쫓겨 읽지 못해도 차차 읽으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공지영'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일단 그녀의 신작이 나오면 주문부터 한다. 고정적인 독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은 나를 항상 좌절하게 만들었다. 어쩜 그렇게 잘 쓸 수 있는건지 ..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원대한 나의 꿈은 공지영, 김영하, 조정래, 이 세 작가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글을 쓴다고 해도 이 세 작가만큼 잘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윤종신이 이런 발언을 했다. '천재가 될 수 없다면 팬이 되어 그들과 함께 하라'라고. 그런 마음이다.
그들처럼 잘 쓸 자신도, 그런 그릇도 아니기에 마음 놓고 그들의 팬이 되리라는..
그래서 이전보다 소박하지만 훨씬 더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다. 그들의 전작주의자가 되고 말리라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제목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공지영이 딸 위녕(위윤녕)에게 쓴 편지글의 형식이지만 그 안에는 작가가 읽은 책의 좋은 구절들이 등장한다. 일종의 독서록 같기도 하고 다른 책의 제목이긴하지만, '인생사용설명서' 같기도 하다.
이 전 공지영의 책들은 나를 너무 괴롭게 만들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도가니', '착한 여자'는 책장을 덮으며 후련함이나 상쾌함보다 씁쓸함과 개운하지 못함에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한 기억이 있다. 지나가는 행색이 초라한 노인만 봐도 눈물을 글썽이는 성격의 나 이므로 사회의 부조리나 현실의 암담함은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이기도했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전작과는 다른 느낌으로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녀를 직접 만날 수 있다면 먼저 두 손 맞잡고 감사하다고 열 번쯤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구에게 내 속내를 보이고 위로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서른이 된 아직은 덜 큰 성인이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로써 쉽게 고민 거리를 흘리고 다닐 처지가 아닌 것이다.
여러모로 고민거리가 많아 끙끙거리던 참이었는데, 뜻밖의 횡재를 했다.
쌓아두더라도 일단 책을 사두는 내 습관을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겨울은 얼마나 행복한지! P.27
워낙에 내가 책을 험하게 보는 스타일이라해도, 형광펜으로 죽죽 그어가며 또 그 옆에 나의 생각을 끼적거리는 건 정말 오랫만의 일이다. 때론 눈물도 흘리고, 때론 고맙다고 나즈막히 되뇌기도 하면서 정말 잘 읽었다. 너무나 많은 위안을 받았다.
왜 젊은 시절의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단다. 그건 그냥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상투어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을. 젊은 시절은 삶의 뿌리를 내리는 계절. 무사태평하게 그 시절들을 보내다가 이미 모든 것이 무겁게 익어버린 가을날에 태풍이 덮치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란다. P. 241
일부 평론가들 사이에선 그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상업적 소설을 쓰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들을 대중화 하건 간에 어떤 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
만큼은 내가 밑줄 치고 생각을 적은 그대로를 딸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다. 분명 살아가면서 겪을 많은 일들로 인한 상처를, 내 아이도 나처럼 치유 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두운 모퉁이를 돌며,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낄 때, 세상의 모든 문들이 네 앞에서만 셔터를 내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모두 지정된 좌석표를 들고 있는데 너 혼자 임시 대기자 줄에 서 있다고 느껴질 때, 언뜻 네가 보았던 모든 희망과 믿음이 실은 환영이 아니었나 의심될 때,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너는 아직 젊고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단다. 그것을 믿어라. P.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