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정말로 좋아하는 여성 작가가 다섯 명이 있는데, 단언컨대 나는 그녀들의 ‘전작주의자’이다. 에쿠니 가오리, 아멜리 노통브, 박완서, 신경숙 그리고 공지영.
말랑거리면서 담백해서 마치 문장에 풀을 먹인 것 같은 에쿠니 가오리,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말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아멜리 노통브. 포용하고 안아주고 도닥여주는 박완서, 나도 모르는 가슴 깊은 곳의 감정을 끌어 올리게 만드는 머리카락처럼 부드럽지만 가늘고 세밀한 신경숙. 그리고 내 머리와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가도, 모두 털어내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갖은 공지영.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는 처음 출간되자마자 정신없이 한 번 읽었었고, 근래 들어 다시 한 번 더 읽은 작품이다. 한겨레에서 창간 20돌을 기념하기 위해서 기획한 산문 연재물을 묶은 책이라는데, 제목처럼 작가는 일상을 가볍게 그리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그녀의 전작들에 비해-예를 들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도가니와 같은-마음 편히,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무조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지영의 인간적 매력에 푹 젖어들 수 있으리라. 만약 작가의 사생활 등을 이유로 그녀에게 호감을 갖지 못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비로소 그 오해들이 풀릴 것이므로.
책의 제목처럼 또한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생각처럼.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는 공지영의 소소한 일상과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큰일도 아니고 별일도 아닌 일을 말 그대로 평범한 그녀의 일상이 담담하지만 유쾌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혹은 은근히 드러나 있다.
언제부턴가 이런 약간 부질없다면 부질없는 글을 꼭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본래 생긴 것과는 다르게 너무 엄숙 주의적으로 글을 썼다는 반성 같은 것과 함께해온 생각이었을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책을 읽을수록 나는 그녀와 나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가령, 청소에 대한 생각도 우리는 일치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청소라는 게 막상 시작해보면 버리는 것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p.34
나 역시 정말 같은 생각이다.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다 보면 으레 쓰레기를 담을 혹은 쓰레기는 아니지만 버려야 하는 물건들을 담을 비닐 봉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청소를 모두 끝낸 후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때로는. 이렇게 버릴 것들을 도대체 왜 돈을 주고 샀을까..히는 고민을 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나와 공작가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 그걸 발견하고 나서 그녀와 더 가까워진 느낌을 갖는다는 것. 그래서 그녀가 이전에 쓴 무거운 책들도 다시 한 번 읽을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끔찍하게 마음이 약해서, 길가에 홀로 앉아 좌판을 벌이는 할머니를 보고도 눈물을 글썽이고 늦은 밤에도 고생하시는 택시 운전기사님들이 안쓰럽고 고마워서 거스름돈은 ‘그냥 두시라며’ 정중히 거절한다. 이런 내가 공지영의 전작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을 리 없고 읽고 나서 즐거웠을 리 없다.
그러나 이 책을 모두 읽고 나서는 ‘그래, 인생 뭐 있나.. 그저 하루하루를 가족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게 최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느낀다. 공지영은.. 머리와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가도, 모두 털어내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갖은 작가라고.
마음에도 근육이 있어.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어림도 없지. 하지만 날마다 연습하면 어느 순간 너도 모르게 어려운 역경들을 벌떡 들어 올리는 널 발견하게 될 거야.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