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에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미키는, 그 소리가 얼마나 시끄럽던지 저도 일어나 ‘거기 좀 조용히 해요!’하고 소리를 친다. 그러곤 깜깜한 데로 굴러 떨어지면서 옷이 벗겨진다. 벌거벗은 채로 미키가 도착한 곳은 환한 부엌. 그곳에선 빵가게 아저씨들이 손님들 아침 식탁에 올릴 빵을 만들고 있었다. 반죽에 밀크(우유)를 넣어야 하는데, 아저씨들은 미키를 밀크로 착각하고 미키를 넣고 반죽해버린다. 막 김이 오르고 빵이 한참 익어 가는데 미키가 반죽을 뚫고 나와 ‘난 밀크가 아니라 미키’라고 외친다. 그리고 그 빵 반죽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밀키웨이 까지 날아가 밀크를 구해온다. 아침식탁에 오를 빵은 미키 덕에 순조롭게 완성되었고, 미키는 다시 자신의 침대로 돌아온다. //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저 너머에는』과 함께 어린 시절을 테마로 한 그의 대표적인 3부작이라고 한다. 1970년에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에도 호불호好不好가 나뉘었다고 하는데, 미국의 보수적인 사서와 교사들은 벌거벗고 생식기가 드러난다는 이유로 이 책을 서가에 꽂아두지도 않고 심지어 불매운동도 펼쳤다고 한다. 의심 많은 보수주의자는 프로이트의 남근 선망 이론까지 들먹거리면서, 미키가 벌거벗고 다니는 것을 은근히 탐닉하고, 우유가 상징하는 원관념이 무엇이냐며 혐의를 묻기도 했단다.
그러나 모리스 샌닥은 심장마비로 죽음의 문전까지 가본 후에 한 그림책 작업이며, 주인공 미키가 케이크로 구워지기 전에 반죽에서 나온 것은 자신의 죽음과도 같은 절망을 극복한 것을 상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의 그림은 일반적인 ‘그림책’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만화 같은 구성과 그림이지만 아이들만 보기엔 아까울 정도로 독창적이고 세련된, 미국의 정서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다.
나는 미키가 환한 부엌에 도착하는 장면에선 마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부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화려한 도시의 거리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케이크와 시럽, 딸기잼 병은 큰 빌딩처럼 묘사되어 있고 하늘의 별과 달 역시 화려한 도시 속의 밤하늘과 같은 느낌을 준다. 미키의 방과 부엌의 상반된 이미지는 마치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무대가 변하는 듯하다.
사실 나는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했었다.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고, 미키와 밀크의 말장난과 같은 부분에서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아이에게는 재밌는 부분일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어린 아이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아이는 이 책에 열광했고 몇 번이고 다시 읽어달라고 주문했다. 왜 이 책이 재밌냐는 물음에 아이는 정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다섯 살이지만 아직 48개월도 되지 않은 아이는 재밌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라는 나의 질문을 더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이 보였다.
『깊은 밤 부엌에서』를 보면서 어른의 시각으로 책을 고르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이 고개를 갸웃거릴지라도, 아이는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충분히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한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다.
이 책과 관련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모리스 샌닥이 이 그림책을 기획하는 데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이 한 제빵회사 광고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당신이 자는 동안 우리는 빵을 만든다’라는 문구가 밤새워 빵을 만드는 뚱뚱한 제빵사를 등장하게 했다는 것이다. 역시 작가들은 일상의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는 것 같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못마땅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것을 보면 『깊은 밤 부엌에서』가 어른들은 모르는 묘한 매력을 품고 있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