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이 달린 흰 정장을 입고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 흰 장갑과 모자로 우아하게 차려입은 한 여인이, 뉴올리언스 시의 ‘극락’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온 그녀의 이름은 블랑시 두보아, 남부 귀족집안에서 성장한 영어 교사다.
한 눈에도 ‘섬세해’ 보이는데 그 모습은 마치 연약한 ‘나방’을 연상하게 한다. 대저택 벨리브를 잃고 의지할 데 하나 없는 처지가 된 그녀는 허름한 이 도시에 하나 뿐인 동생 스텔라를 만나러 왔다.
뉴올리언스시의 ‘극락’이라고 불리는 거리 모퉁이의 2층짜리 건물에는 그녀의 동생 스텔라가 남성성을 짙게 풍기는 남편 스텐리와 함께 살고 있다. 스텔라가 귀족집안에서 성장해 품위 있는 여성인데 반해 스텐리는 여자와 나누는 쾌락이 삶의 중심인, 거친 남자이다.
스텔라는 하룻밤이라도 그와 떨어져있으면 못 견딜 만큼 그와의 생활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과거의 영예 따위는 잊고 거친 남편과 함께 사는 현실에 적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를 잊지 못하는 언니 블랑시가 찾아오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잘 살았던 한때를 생각하며 허세를 부리는 언니 블랑시와 사사건건 대립하는 남편 스텐리 사이에서 스텔라는 이미 익숙해진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블랑시는 점점 더 히스테릭해지고 설상가상으로 나약했던 시절에 방탕한 생활을 했던 과거까지 들통 날 지경에 이른다. 스텐리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녀의 과거를 밝히려하고 블랑시는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스텐리의 친구 미치는 욕실에서 나오는 블랑시를 보고 첫 눈에 반하지만, 스텐리가 집요하게 밝힌 그녀의 과거로 결국 블랑시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세상에 자기편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블랑시. 그녀에게 남은 것은 허세와 과거에 대한 향수 뿐 이다. 동생 스텔라가 아이를 낳으러 간 사이 스텐리에게 겁탈까지 당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스텔라는 남편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언니를 정신병원에 보낸다.
재산과 가족, 사랑하는 사람까지 삶의 이유가 되었던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자가 그 고통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파멸하는 과정을 담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노골적인 성적 대사와 장면으로 공연 초기에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인기를 누렸다는데, 외적인 이유로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인간의 나약함과 그런 인간을 지켜만 보는 주변인들의 매정함이 흔한 일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블랑시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이 데칼코마니의 무늬처럼 같다고 여기며 공감하고 함께 슬퍼했을지도..
1947년에 써진 이 작품속의 등장인물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종종 볼 수 있다. 과거의 화려함을 잊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 변한 자신의 처지를 용납하지 못하고 환상 속에서라도 가지려 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나약함은 21세기에도 여전하다.
이 글을 쓴 테네시 윌리엄스는 ‘아서 밀러’와 더불어 현대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이다. 호텔 보이와 제화회사의 잡부 일을 하면서 작품을 썼다고 한다.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면서 쓴 희곡 유리동물원이 시카고에서 상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전후 미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수많은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미국 작가 중 한 명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그를 ‘웃기를 좋아하고 상냥했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이었다. 남을 해롭게 할 줄도 모르고 남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냉혹하게 굴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선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호탕한 아버지와 예민한 성격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테네시 윌리엄스는 남부에서 생활하다가 도시로 이주하면서 빈민가 생활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런 그의 성장 배경 때문인지, 그는 “내가 바로 블랑시 두보아”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웃기를 좋아하고 상냥했고, 선한 사람이었지만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주고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블랑시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키진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