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없다 해도 나만큼 손재주가 없는 사람도 드물 정도로 나는 자타공인 ‘마이너스의 손’이다. 어느 정도의 손재주인가 하면 중․고등학교 때 가정․가사 실습 시간에 선생님이 대놓고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이제와 밝히지만 중학교 때 자수 실습은 엄마가 대신 해주었고, 고등학교1학년 때 레이스 뜨기는 5천원 주고 친구에게 부탁했으며, 2학년 때 한복 저고리 만들기는 아예 세탁소에 맡겼었다. 나중에 그게 들통 나 엄청나게 혼났지만.
당연히 그림 그리기 실력도 젬병이어서 내 딴엔 고심해가며 열심히 그린 건데 선생님 눈에는 대충 장난한 것처럼 보였는지 반항하는 거냐는 오해도 샀었다.
심지어 삼각형, 사각형, 원 같은 기본 도형도 제대로 못 그린다. 좌우대칭이 안 맞아 삐뚤빼뚤하니 엉성하기 짝이 없다. 자연스럽게 ‘그림’은 좋아해도 ‘그리기’는 싫어하는 성향이 굳어졌고,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도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 살아왔다. 최근까지.
그런데 요즘 다섯 살 난 딸아이가 하트를 그려내라, 토끼를 그려내라, 공주 옷을 그려내라 당당히 요구하고 나섰다. 하트나 별, 리본은 그럭저럭 그리겠는데 토끼나 공주 옷, 사람은 도무지 그릴 수가 없었다. 사람을 그려달라기에 한동안 유행하던 ‘졸라맨’처럼 그렸더니 아이는 “ 엄마! 사람 그려달라고!”라며 화를 벌컥 낸다.
아이의 요구사항이 많아질수록 참 난감해진다. 초등학교 때에도 공부하지 않았던 미술 공부를 나이 서른 넘어서 시작해야 하나, 아직까지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아이에게 ‘네 엄마는 그림은 못 그리니 그리 알아라’하고 냉정하게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독학으로 일러스트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아이를 위해서 그 정도 노력을 못할까 싶기도 했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객쩍은 혈기가 불쑥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한참을 검색한 끝에 우모토 사치코의 『일러스트 연습장 동물 그리기』로 교제를 결정했다. 어차피 미술 학원에 다닐 시간도 없고, 다닐 용기도 없었으니.
그렇게 ‘나 홀로 미술 공부’는 시작되었다. 그래봤자 직장에서 시간 날 때마다 몰래몰래 그리는 정도다. 『일러스트 연습장 동물 그리기』는 비교적 상세히 설명되어 있고 특징을 잡아 동물을 그리는 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림의 희한한 특징 중 하나는 참 쉽게 보이는 데 막상 그리려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보고 선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는 연습을 하면서(사실은..) 한참을 헤맸다. 종이와 연필을 집어 던지고 싶을 때마다 내가 딸아이에게 자주 해주는 말(“처음엔 엄마도 잘 못했는데, 여러 번 연습하다 보니깐 할 수 있게 되었어. 그러니깐 코알라야 너도 여러 번 연습하면 금방 잘 할 수 있어.”)을 되새김질 해가며 마음을 잡았다.
여전히 “ 이제 눈 감고도 코끼리나 원숭이 정도는 자신 있게 그린다.”라고 말 할 순 없지만, 머리와 몸통의 비율이 맞지 않을지언정 얼핏 봐도 코끼리 비슷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성과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 시작한 독학 공부였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복잡했던 머리와 마음도 안정되어 정신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결과적으로는 내게 큰 이득이 된 것 같다. 혼자 그림 공부를 시작하려는 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