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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도서]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황현진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언제부턴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책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표지 디자인이 좋아서, 책의 내용이 좋아서, 이런 이유들로 몇 번의 긍정적인 경험을 한 뒤로 일종의 ‘믿음’이랄까.. 그런 것이 생겼다. 그 믿음은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책은 일단 덮어놓고 읽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은 좀 늦더라도 빼놓지 않고 읽는 편이다.

1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는 11월답지 않게 포근했던 어느 날 읽기 시작했다. ‘죽을 만큼 아프지 않아’라는 제목과 왠지 배우 유승호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애가 그려진 노란 표지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이 ‘성장 소설’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어라, 뭐지? 성장 소설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성장소설은 갈등을 겪던 인물이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성숙해지고 성인이 되는 과정이 드러나는데,『죽을 만큼 아프지 않아』는 그런 과정이 입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장소설이라 함은 유년기 혹은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기 전에 겪는 인물의 내․외면적 갈등과 정신적인 성장,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장통을 그리는 작품이 아니던가.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더 빛을 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소설은 자칫 잘못하면 작가의 개인사로 착각할 만큼 구구 절절 지루한 에피소드가 반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죽을 만큼 아프지 않아』는 식상하진 않다. 

 

태씨 가문 26대손 ‘태만생’의 이력부터 심상치 않다. 인생의 전성기가 중학생 시절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이 아이는 요즘 애들답지 않게 취미는 독서이고 특기가 글쓰기란다.

서울 용화공고 3학년인데 중학교 때 좋아했던 여자애(오선)의 이상형이 ‘공고생’이었다는 이유로 공고에 진학한 불량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불량하지 않은 어리바리한 애다.

그의 가족도 특이하기는 마찬가지다. 낮과 밤이 바뀌어서 낮에는 자고 밤엔 일어나는 엄마(나는 이 엄마의 캐릭터를 보고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떠올렸다.)와 매 끼니마다 마른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자식에게 한없이 쿨 한 아빠가 등장한다.

게다가 이들은 피붙이 하나 없는 미국으로, 하나 있는 피붙이를 떼어놓고 이민을 가겠다고 떠난다.  게이인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태만생의 친구(태화) 역시 평범하지 않다. 이태원에서 짝퉁 명품 삐끼로 일하는데, 태만생의 부모가 이민을 떠나면서 그에게도 삐끼 알바 자리를 주선한다.


나는 왜 이 작품이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일까 생각해보았다. 수상을 할 만큼 강하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며칠 전에 1회 수상작 ‘새의 선물’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만생’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얘는 잘 지내나, 요즘 뭐할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동생의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태만생은 그렇다. 특별히 문제아도 아니고 불량한 것도 아니다. 분명 독특하지만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매력적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성장 소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태만생의 인생 한 부분을 살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자꾸 다른 곳으로 이야기가 샌다는 점이다. 유진이와의 관계 풀이도 얕았다. 이야기를 풀다만 느낌이랄까, 작가가 쓰다만 듯한 느낌이랄까.

급하게 정리된 듯한 소설의 마무리도 아쉽다. 한참 재미나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어 텔레비전이 꺼졌을 때의 황당함을 소설을 읽다 느꼈으니. 그만큼 재미있는 스토리라는 의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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