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센티미터』를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보지 않았다면, 아마 라이트 노벨은 평생가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이트 노벨은 여고생들이 주로 읽는 소설이니까.
우연히 일본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블로그에서 ‘초속 5센티미터’를 알게 되었다.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을 관람하는 순간,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 듯한 경험을 했다. 이 먹먹한 아련함을 어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같은 제목의 책이 나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구입해서 단숨에 읽고 말았다, 금요일 저녁에. 애니의 주제곡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를 무한반복해서 들으면서..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토오노 타카키와 시노하라 아카리, 둘은 동갑내기로 차례로 전학을 오면서 만나게 된다. 부모의 직업 때문에 잦은 전학을 해야 했던 공통점 때문에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 외에도 둘의 공통점은 많았다. 키가 작고 잔병치레가 잦아 운동장보다 도서관을 좋아한 것, 체육시간이 고통이었다는 것.
집의 방향도 비슷해서 하굣길도 같이 다니다보니 극히 자연스럽게 쉬는 시간과 방과 후의 많은 시간을 둘이서 보내게 된다. 연애라고 부르기엔 어린 감정이었다고는 해도 분명 둘은 서로를 좋아했다. 같은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함께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하지만, 아카리는 또 다시 전학을 가야했고 타카키는 이미 아카리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던 처지였던지라
극도의 고통을 겪게 되고, 그 슬픔에 오히려 무뚝뚝하게 대하고 만다.
중학교에 입학한 타카키는 아카리를 잊기 위해 먼저 친구들을 사귀고 정신없이 운동을 하면서 필사적이 노력을 한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아카리에게서 편지가 온다.
타카키는 여전히 아카리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차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가던 중 이번엔 타카키의 전학이 결정되었고, 둘은 그 전에 다시 한 번 만나기로 약속한다.
소설은 애니메이션과 같은 구성이다. 1부는 이 둘의 만남부터 재회까지, 2부는 타카키의 고등학교 시절, 3부는 성인이 된 타카키의 생활을 그리고 있는데 소설은 타카키의 첫사랑 이야기를 그린다고 보면 된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을 조금 더 구체화한 소설을 읽으면서 ‘심장을 누가 손가락으로 직접 살짝 만진 것 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쑤시는 통증’을 느꼈던 것은 잊고 지냈던 나의 기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유치한 내용일지 모르지만, 사실 소설의 내용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매개체가 되어 머릿속에서 사라졌던 그 어떤 감정과 기억을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소설의 강점이기도 하다. 행간에서 느낄 수 있는 작품의 여운이 뿐만 아니라 각자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
소설을 먼저 읽은 경우엔 그냥 흔한 첫사랑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지도 모르는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랑 이야기이지만,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섬세한 표현들이 마음을 뒤흔든다. 벚꽃이 핀 어느 봄날 밤에 읽는다면, 분명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고나서 후에 소설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아름답지만 안타깝지만 씁쓸하고 아련함까지.. 느낄 수 있는 소설과 애니메이션이다.
(노약자, 임신부 모두 봐도 무방하나 최근 이별을 한 사람은 절대 보면 안 된다고 적극 제지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