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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도서] 침이 고인다

김애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침이 고인다』는 김애란 작가가 2005년~2007년 사이에 발표한 단편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동시대를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동년배 작가가 쓴 것들이어서 그런지 소설 곳곳에 서 유독 낯익은 풍경들과 물건 그리고 지명을 볼 수 있었다.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는 ‘삶’의 모습들은 나의 그것과 부합되는 부분이 거의 없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그 모든 일들이 나의 일상이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침이 고인다』에 수록된 작품들이 내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대학시절과 현재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내 모습에 대해 상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김애란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해야 할 일은 거창하게 주제의식이나 인물의 의도, 이런 것들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작가가 느끼고 경험해서 만든 프레임 속의 결과물을 지켜보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일상적인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김애란 작가만의 기술이 소설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표제작 「침이 고인다」를 비롯하여, 「도도한 생활」, 「성탄특선」 등 총8개의 단편이 수록된 『침이 고인다』에는 이 시대를 결코 호락호락하게 살아낸다고 할 수 없는 젊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삶은 나의 삶이기도 하고, 내 친구들의 삶이기도 하다.


도도한 생활 - 만두를 빚어 파는 억척스러운 엄마와 무능력한데 빚보증까지 잘못 선 뻔뻔한 아빠, 그들의 두 딸 이야기. 반지하방에 물이 차오르는 속도만큼 그녀들이 인생을 살면서 흘릴 눈물의 양이 비례할 것 같다는 씁쓸한 예감이 들었다.


침이 고인다- 여자들이 함께 지내다보면 생리 주기도, 옷 입는 스타일이나 말투도 비슷해진다. 약간은 식상하기까지 한 흔해빠진 스토리를 간직한 그녀의 후배, 껌을 주고 떠났다는 엄마이야기. 정말 사실일까? 어쨌든 3개월 정도 함께 후배와 함께 사는 주인공. 헤어지려고 마음먹자 단 하루 만에 나가라는 말을 하기로 결심하고, 바로 말을 꺼낸다. 타인과의 관계 맺음은 이렇게 허무할 정도로 쉽고, 또 허무할 정도로 어려운 게 아닐까. 외롭다고 하지만 결국은 혼자 있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이 시대의 적당히 이타적이고 적당히 이기적인 젊은이들의 단상을 보는 듯 했다.


성탄특선 - 80년대 생이 아니더라도 공감할 부분이 많지 않을까. 특히 크리스마스이브라면 나도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작가의 경험담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적나라함과 솔직함이 좋았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 - 80년대 생, 2000년대에 대학생활을 마무리한 세대라면 충분히 공감할 내용이고, 거기에 재수까지 했다면 금상첨화! 친한 친구의 얘기 같았다. 


칼자국 - 밥해주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양 ‘밥 먹었니?’하며 밥부터 차리고 보는 전형적인 한국 엄마, 못 배웠지만 손길이 지나가면 죽어가는 식물도 살아나고 비쩍 마른 아이도 토실토실하게 만드는 생명의 손을 가진 한국 엄마. 적당히 허영심도 있고 자부심도 있고 힘도 있는 한국 엄마, 여자인데도 여자와 남자가 아닌 제3의 성性인 것 같은 한국 엄마를 그린 단편.

요즘 유행하는 말로 참 ‘찰지게 글 잘 쓴다’, 김애란 작가는. 나잇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아니면 같은 충남 출신이라 그런지 김애란 작가가 쓴 글은 늘 친근하다.

생각해보면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인데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그 이야기들은 특별하게 가공된다.  마트에서 파는 어묵의 원재료는 원래 바닷속에서 살던 물고기들이라는 것을 굳이 상상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듯, 그녀가 쓴 소설은 같은 소재로 전혀 다른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내가 서민의 집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수더분한 그녀의 단편들이 참 좋다. 그것들은 볼이 빨갛고, 포니테일로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싱싱한 처녀애같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얼굴을 한, 60년대 한국 작가들의 글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이라고 말했던「네모난 자리들」의 주인공처럼 먼 훗날 2000년대 생인 내 아이가 ‘내가 가질 수 없는 얼굴을 한, 80년대 생 한국 작가들의 글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해졌다.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엄마가 살던 시대는 이랬단다.” 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앨범 같은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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