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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최고의 작품은 무엇?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억관 역
문학동네 | 2010년 12월

 

 

‘상실의 시대’는 하루키에 대한 내 첫 경험이다. 그게 대학 1학년 때의 일이니 벌써 13년이 훌쩍 흘렀다. 그 사이 하루키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과 신뢰를 갖게 되었고, 최근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비롯해 ‘1Q84’, ‘무라카미 라디오 3부작 세트’ ‘잡문집’, ‘해변의 카프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등 번역된 그의 작품들을 사 모으고 때때로 어루만지며 늘 곁에 두었다. 심지어 ‘상실의 시대’의 경우는 문학사상사의 것과 문사미디어의 ‘노르웨이의 숲’을 모두 소장하고 비교하며 읽을 정도로 좋아한다.


그의 소설과 에세이는 사람을 묘하게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어서,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이 두루 어울린다. 나는 그의 소설과 에세이를 병원과 마트와 해변과 직장에서 읽었다.


진귀한 음식들로 가득한 뷔페에서 무얼 먹을까 서성이는 것처럼, 좋아하는 작품을 고르라하면 도무지 결정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소설과 에세이들을 좋아하지만, 그런 감정을 가까스로 배제하고 최고의 작품을 고르라고 주문한다면 나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가 최고라고 말할 것이다. 언더그라운드는 1995년 옴진리교 가스테러사건을 배경으로 한 르포르타주로 당시 사건의 피해자를 하루키가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한 동안 멍하니, 언더그라운드만 생각할 정도였다. 책을 읽고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은 처음이었고, 그 이후에도 그런 경험은 하지 못했다. 내가 알던 하루키는 성sex과 환상, 그리고 늘 젊고 감각적인 사람이어서, 나는 그를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진정한 ‘청춘’이고,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만들어낸 정제된 상황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그런데 언더그라운드를 읽으면서 하루키가 달라보였다. 무엇보다 늘 청춘인 것 같던 그가 49년 생, 제 나이로 보였고 보이지 않던 무수한 익명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인생이란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면 각자 이렇게나 심오한 것이구나 하고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깊이에 적지 않은 감동마저 받았다.’ p. 716.

언더그라운드/무라카미 하루키/문학동네


옴진리교 교주의 지시를 받은 신도들이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게 사린 가스를 살포하여 살상한 이 테러 사건에는 ‘옴진리교 가스테러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루키는 이 이름 뒤에 숨겨진 수많은 피해자들 중 62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부활시켰다.

자신을 최대한 억제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나는 하루키 최고의 작품이 언더그라운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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