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당분간 이런 이야기는 또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
비극적인 시대에 태어나 한 평생 희생을 되풀이하다 세상을 떠난 여자의 이야기, 그 여자가 낳은 아들과 딸의 이야기, 모든 것이 풍요로운 세상에 태어나 ‘희생’이라는 것이 동화에서나 나오는 얘기라고 알고 자라는 요즘 아이들이 살갗에 스며들도록 이해하긴 어려운 선 굵은 이야기.
『잘 가요 엄마』는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베인 소설이라고 한다. 나이 칠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누더기 같았고, 남에게 말하기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던 삶을 고백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김주영 작가.
그의 진솔한 이야기는 편안한 시대에 태어나 마음껏 살 수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깨닫게 해주었고, 고단하게 살아온 우리 엄마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이유로 예전부터 풍요롭고 편안한 삶을 살았을 거라는 착각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우에게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은 나는(배경원), 잠시 멍해진다.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구석에 끼어있는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켜자, 전날 저녁 보던 포르노가 70인치 화면을 꽉 채운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본다. 그것은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가 오랜 신산을 겪은 끝에 소슬했던 이승의 삶과 드디어 이별하고 말았다는 소식이 나의 저속하고 어리석은 일상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증거를 스스로 경험한 셈’이 된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와 어쩌다 이리도 경원한 사이가 되었을까.
이튿날 새벽녘, 나는 어머니의 시신이 있다는 고향의 노인병원에 도착한다. 장례를 치르는 그 며칠 사이에 나는 살면서 모른 척 했고,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한꺼번에 알게 된다. ‘세상에는 제 발등에 떨어진 일도 자기 자신만 모르고 남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일이 다반사인 것처럼.’ 뒤늦게, 아주 뒤늦게.
소설은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은 주인공이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장례를 치르고 고향에 머무는 그 며칠 사이, 그는 이복 아우에게서 가족사에 얽힌 진실을 듣게 된다.
독자는 주인공이 회상하는 그의 유년기와 현실에서 이복동생에게 듣는 가족사의 진실을 번갈아가며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그의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기에만 초점을 맞췄었다. 그래서인지 내내 까맣고 마른 아이가 떠올랐다.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은 눈물 자국을 한 아이. 어린 시절에 겪은 가난의 고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그 상처는 그림자가 되어 어딜 가든 따라다닌다. 김주영 작가도 말하지 않았던가. 우산과 가방을 사고 또 샀었다고.
‘남이 보기엔 항상 어정쩡한 아이, 이도 저도 아닌, 주저가 많고 단호하지 못한 그런 얼치기로 취급되어 또래들로부터 줄곧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어머니에게 실토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유독 잔인한 구석이 있어서 나보다 조금만 못났어도 가차 없이 놀리고 상처를 줘서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었을지라도 상대방에게는 쓰라린 기억을 남기곤 한다.
주눅 들고 눈치 봤을 주인공의 유년기를 떠올리면서, 현재 아내와 사이가 덤덤한 것 역시 그 때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나는 추측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베풀 줄도 아는 법이니까.
그런데 소설이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주인공의 가족사가 드러나면서, 시대를 잘 못 태어나 평생 고생만 하다 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처로움이 더 커졌다. 기구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팔자가 같은 여자로써 어찌나 안타깝던지.
대를 이어 자식에게까지 고통을 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기구한 인생은, 그 속까지 헤아리지 못했던 아들의 기억 속에 원망 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내 속으로 난 자식에게 살가운 애정 표현 한 번 받지 못하고 평생을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살았을 어머니의 모습에, 아이를 키우는 어미 된 입장에서 저릿저릿한 가슴의 통증을 감출 수 없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의 사람들이 그렇듯, 저마다의 이유와 사정이 있다.
결혼식을 올려보지도 못하고 두 남자와 살아야 했던 어머니에게도, 누나에게 기대어 살아야 했던 외삼촌에게도, 어머니 팔자를 꼬이게 만들었던 큰외삼촌과 외할아버지에게도, 평생 어머니의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이복동생에게도.
누군가의 선택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고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이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그처럼 서러운 일이 또 있을까요.’ 어머니의 과거를 이야기하던 아우가 형에게 한 말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처럼 서럽고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누구에게나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너무나 아깝고 억울하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만인이 품게 만들었다. 만인이 자신의 어머니의 生을 함께 안타까워하고, 그녀의 인생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조금이나마 작가와 어머니의 생이 위로 받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