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그들의 적성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호기심 덩어리인 아이들은 온 세상이 자기 것인양 관심도 많지만 그만큼 싫증도 쉽게 내기 때문에 시간과 돈과 기대를 투자한 엄마를 애태운다. 그래서 나는, 자식의 재능을 찾아내는 혜안을 가진 선배 엄마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일곱 자녀 중 셋을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운 故이원숙 여사는 그런 점에서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이다. 사람에 따라 각기 적성과 재능이 있다고 하는데, 이여사의 재능은 자녀들의 ‘적성’을 찾고 그것을 키워주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식 교육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분이다.
『통 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는 책을 읽고 나는 몇 번이나 감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만큼 통 큰 엄마가 어디 또 있을까 싶었고, 자식 교육에 열성을 넘어 극성인 엄마가 어디 또 있을까 싶었고,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아낸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故이원숙 여사는 이화여전 가사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여자는 교육시키지 않았던 시대에 그녀가 유학까지 다녀올 수 있었던 배경은, 딸도 배울 수 있는 만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신 부모님 덕이었다. 이 여사의 모친은 딸들이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 하는 일이 없도록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 하셨다고 한다.
그녀는 책을 통해 몇 번이고 자신의 부모님을 따라 자식 교육을 했다고 고백했는데, 그런 모습을 통해 왜 가풍이 중요한지 알 것 같았다.
육칠십 년대에 음악이며 발레를 가르치고, 전쟁 통에서도 피아노를 가지고 피난길에 오른 것은 지금에 비교해보아도 보통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엘리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위해 음식 장사를 할 정도로 가정과 자식에 충실했기 때문에, 일곱 자녀들이 엇나가지 않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사는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성공시키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이 자녀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지휘자 정명훈 역시 어머니의 교육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어머니의 교육방법에는 세 가지 키포인트가 있어요. 먼저 아이들에게 맞는 것을 찾아주는 겁니다. 그런 다음 아이가 그것을 좋아하고 스스로 하겠다고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결심을 하면 그때서야 아이가 그것을 공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 지원해주셨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생각해보았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눈여겨 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순수하게 지원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
남들 앞에서는 공부만 잘해서는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쿨 한 척 하면서도, 내 아이가 남보다 뛰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더 콕 찍어 말하면 ‘성적’이 뛰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의 바람을 묵살한 적은 또 얼마나 자주 있었던지..
이원숙 여사는 “아이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면 아이의 소질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고, 아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려면 부모의 욕심을 앞세우지 말고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게 아이의 관심사를 찾아냈으면, “기회를 최대한 열어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아이라도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그것을 발휘할 시기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 기회를 만들기는 불가능하므로 최대한 기회를 만들어주면서 많은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라고 조언한다.
다른 육아서에도 흔히 등장하는 말이지만, 어렵던 시절에 일곱이나 되는 아이를 각자의 재능을 꽃피게 한 선배 엄마의 육성이기 때문에 좀 더 가깝게 와 닿았다. 그래서 진작부터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는 아이의 바람을 이뤄주기로 했다. 어린 아이의 의견이라 무시한 것도 사실인데. 내 욕심이나 기대를 버리고 아이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미술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는 더 밝아졌고, 즐거워한다. 아이에게 미술에 대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엄마만의 착각이 또 발동하기 시작했지만, 어쨌거나 당분간은 기회를 주고 지켜보려고 한다. ‘최대한 기회를 만들어 주면서 많은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