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신념信念이 절대다수의 무신념無信念 앞에서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특히 자식의 교육 문제에서만큼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그동안 조기교육보다 적기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왔지만 큰 아이의 초등 입학을 앞둔 지금, 그것이 과연 옳은 생각이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나 자신이 전문인이 되기 위한 국가고시도, 나라의 녹을 먹기 위한 시험도 단번에 합격했기에 공부만큼은 ‘시간과 개인의 노력과 돈’만 있으면 무조건 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90년대 초중고,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젊은 엄마니까 내 생각은 고리타분하지 않다는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고.
그런데 이 책, 민성원의 『엄마라서 실수한다』를 읽고 ‘정말 실수했구나’ 자책하고 있고 위안 받고 있다. 교육에 관한 나의 오만방자함이 구시대적舊時代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우물 안에서 잘난 척 하는 한 마리의 개구리일 뿐이었다.
‘내 아이에 대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엄마의 대단한 오해’, ‘부모라는 이름 때문에 빠져드는 엄마의 순진한 착각’, ‘내 아이를 위해 교육 전문가를 자처하는 엄마의 만만한 실수’, ‘교육이 미래다’ 등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아이의 교육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과 대안이 기술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학습과 관련해서 만큼은 아이를 고의로 방치 했던 나의 과거가, 너무도 견고해서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나의 교육관에 가식이 섞여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1부, 〈내 아이에 대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엄마의 대단한 오해〉중 ‘아이가 공부를 좋아하게 만드는 마법’을 읽으며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아이의 행동들이 떠올랐다.
잔디를 망가뜨리는 방법은 그냥 두는 법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잔디를 내버려두면 잡초만 무성해진다. 좋은 습관을 들이려면 꾸준히 노력해야 하지만, 나쁜 습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어느 순간 좀처럼 떨치기 힘든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p. 49.
특히 ‘잔디를 망가뜨리는 방법은 그냥 두는 법이다.’ 이 말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떠오르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었다. 적기 교육을 주장했던 나의 행동이 방치되어 망가진 잔디처럼 아이를 학습적으로 방치해서 서서히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많은 아이들이 마라톤 출발점에서 같이 서 있다가 모두 출발했는데 내 아이에게만 ‘어차피 49.195km를 달려야 하니 처음부터 힘 뺄 필요 없다, 조금 늦게 출발해도 상관없다. 너무 빨리 출발하면 지칠 뿐이다.’ 는 논리로 아이를 붙잡아둔 꼴은 아닐까, 그래서 이미 저 멀리 앞선 아이들의 뒤통수를 보고 뛰어야 할 내 아이는 정작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이미 아이는 유치원에서 먼저 출발한 아이와 자신의 차이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학원에서 그리기와 만들기를 배운 아이들을 보고 자신도 잘 하고 싶다는 마음과 부러워하는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을, 어느 때는 균형을 잃고 질투와 시기심의 연못에 빠진다는 것을 이미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던가.
90%의 아이들이 다 하고 있는데 부모의 소신에 의해 안하는 10%의 아이. 부모에게는 소신이겠지만 10%에 속하는 당사자인 아이에게는 자존감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아이가 보인 행동들의 의미를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공부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등한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과 이상 앞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것 같다. 더불어 부모로써 자신의 미래를 위한 부단한 고민과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부터도 그렇지만 흔히 엄마들은 ‘우리 아이는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지지해 줘야 한다고 말하는 교육학자들이 있다. 달리기를 못해도 축구를 좋아하면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을까? 달리기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달리기 실력은 세계적인 선수만큼 향상되지 않는다. 따뜻한 마음으로 의료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해서 의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의사가 되기 위한 첫 관문, 의대에 진학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은 세상을 모른다. 진로는 아이가 원하는 것에서 찾기보다 아이가 잘하는 것에서 찾는 편이 현명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삼도록 권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직업은 즐기는 것을 넘어 잘할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다. p.20
이 구절은 아이의 장래에 관한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자, 『엄마라서 실수한다』가 어떤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지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이런 문장들은 보수적으로 보이는 생각이 사실은 가장 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내년 3월이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많은 고민거리가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일부는 정리할 수 있었고 일부는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교육부터 용돈관리까지 이 책에 실린 현실적인 조언은 진심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자녀 교육에 대한 소신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뿐만 아니라 늘 새로운 시선으로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현실적인 조언을 원하는 부모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어서 참 고마웠고..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주) 위즈덤하우스 예담friend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