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두고 에쿠니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하는 목소리가 많다. 요리에 빗대어 말하자면 나는 이 작품이 메인 디시보다는 전채나 디저트 같은 가벼우면서도 정직한 맛으로 느껴진다. 요코는 자유롭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살려고 한다. 운명의 보트에 몸을 맡기고, 담배와 커피와 초콜릿 향기에 싸여서.’ 아동문학가 야마시타 하루오
『하느님의 보트』는 익숙해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딸과 익숙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엄마의 이야기, 한 남자와의 사랑과 약속에 인생을 건 여자의 이야기이다.
성인 여자가 즐길 수 있는 것, 이를테면 담배나 커피, 초콜릿 같은 것들을 모두 즐기며 사는 요코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여행을 시작해야 했던 그녀의 딸 소우코의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는 이 작품을 두고 ‘소소하고 조용한 이야기이지만 광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나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이다. 끔찍할 정도로 광기 어린 소설이다.
별 문제 없고 평온해 보이는 모녀의 생활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폭풍 전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바람이 불어치기 직전인 그런 분위기.
“내 짐은 그렇게 많지 않다. 피아노와 간판과 옷가지가 들어 있는 보스턴백 하나, 그리고 에스프레소 메이커. 나는 그 사람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반드시 찾아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반드시 찾아내겠노라고. 그렇게 말할 때의 그 사람 눈을 봤다면 누구든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설령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이라 해도, 나는 평생 그 사람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후회한 적은 없지만, 아주 가끔 불현듯 무서워진다. 너무 까마득해지고 말아서. ” (요코)
요코는 대학 졸업 후 스승이었던 모모이 선생과 결혼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결혼 생활은 지루했고, 그 와중에 우연히 한 남자를 알게 된다. 그 남자와 한여름 해변의 모닥불 같은 사랑을 한 그녀는 소우코를 임신하게 되고, 반드시 다시 찾아낼 것이라는 약속을 남긴채 그는 떠난다. 남편 모모이 선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도) 이혼을 강행한 요코는 그의 약속을 믿으며 정처 없이 떠도는 생활을 시작한다. 집착이라고 볼 수도 있는 요코의 사랑과 그 사랑 때문에 태어난 소우코. 아이는 엄마의 사랑 때문에 평범한 환경에서 아이답게 자랄 권리를 박탈당한다.
요코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남자들의 관심도 마다한다. 오로지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든 찾아낼 것이라는 그와의 약속만을 기억할 뿐이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그녀는 변함이 없다. 나는 철저하게 고지식한 그녀의 믿음이 무서웠다.
늘 떠돌이 생활을 하느라 친구와 함께 하는 소소하지만 또래만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조차 포기해야했던 소우코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자신의 생각을 엄마에게 전하게 된다.
“나는 현실을 살고 싶어. 엄마는 현실을 살고 있지 않잖아. 나는 소우코가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얼굴을 찡그리며 울음을 터뜨린 소우코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엄마의 세계에 계속 살아주지 못해서.”
자랄수록 엄마의 세계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소우코는 과거 탈선했던 엄마처럼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딸 소우코가 현실의 삶을 택한 후 16년간 떠돌던 요코는 자신이 유년기를 보내고, 은사와 결혼 생활을 하고 소우코의 아빠를 만났던 도쿄로 돌아간다. 그리고 16년 만에 돌아간 그곳에서 거짓말처럼 그를, 그녀가 평생 기다려오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다.
조금 허무했다. 애초에 그녀가 남편 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대로 도쿄에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녀 자신이 선택한 떠돌이 생활이었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이도 안락하고 평온한 환경에서 잘 자랐을지도 모른다. 나는 요코가 소우코의 아빠를 도쿄에서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더 경악했다. 그녀의 광기가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으니까. 누군가와의 약속은 중요하지만, 그 믿음 하나로 평생을 떠돈다는 건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무엇보다 그녀에겐 아이가 있었으니까.
한편으론 이런 의문도 든다. 누군가와의 약속을 굳게 믿고 16년간을 기다릴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금세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그런 의미 에서보면 요코가 탄 하느님의 보트는 ‘약속의 보트’가 아닐까 싶다. 약속과 믿음의 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