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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도서]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저/신유희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일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해.


읽으면서 깊은 한숨을 몇 번이나 토해냈다. 2005년에 읽고, 2011년에 읽고 이번이 세 번째다.  그 사이 나는 삼십대가 되었고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9년 전, 처음 읽었을 적에는 ‘토오루’와 ‘코우지’만 보였다. 궁금했었다. 왜 그들이 연상인 여자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사랑이 아니라 모성애를 갈급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십대이고 미혼이었던 그 시절, 나는「도쿄타워」를 에쿠니 가오리다운 ‘불륜’까지도 미화시킨 ‘사랑’이야기라고 결론지었었다.


3년 전, 두 번째 읽은 「도쿄타워」에서는 ‘시후미’가 먼저 보였다. 그녀는 왜 연하의, 그것도 지인의 아들과 불륜을 저질렀을까?  결혼 후의 안정감과 공허함. 부족함이 없는 안락한 환경에서 일탈을 꿈꿨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주인공 토오루는 부유한 모자가정에서자란 조숙했던 소년이다. 그는 엄마의 지인인 시후미와 사귀고 있다. 그의 친구 코우지 역시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또래보다 연상을 더 좋아하는 쾌활한 청년이다.


토오루와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경계심이 많다든지, 주변 사람에게 묻혀가지 않는 점이라든지. 적어도 코우지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연상의 여자. 자신들은 둘 다 연상의 여자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키미코의 웃음소리를 떠올린다. 연상의 여자 쪽이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자신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계획적이었다는 것. p.34


토오루가 연인 시후미를 만났을 당시, 그는 이성을 사귄 경험이 없었고 시후미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아이는 없고 대산 가게와(아마도 이것은 경제적인 자립을 의미하리라.)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 시후미는 남편과 식사를 따로따로 할 때가 많고 요리도 거의 하지 않는, 결혼은 했으되 보편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여성이다. 이런 시후미를 토오루는 뭐든 ‘똑부러지게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토오루는 내내 시후미만을 사랑하고 있다. 코우지가 같은 반 친구의 엄마와 정사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대학에 가서 유리를 사귀는 동안에도, 또 다른 연상녀인 키미코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동안에도, 심지어 이들과의 관계가 모두 끝난 후에도.

토오루는 열일곱 살에 시후미와 처음 관계를 맺은 다음부터  내내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여우’처럼 살아간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라고 말하던 여우처럼. 시후미에게 길들여져.

토오루가 사춘기 때 시후미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것은 그의 순정이라 생각해두자. 그럼 왜 시후미는 열일곱 소년과 관계를 맺었던 것일까.

나는 그것을 코우지의 생각을 통해 짐작한다.


유부녀를 유혹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때도 지금도, 코우지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즐거움에 굶주려 있는 것이다. 은밀한 즐거움에,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 p.47

결혼 후의 공허함 그리고 안정감. 남편이 아닌 다른 이성에게 어필해서는 안 된다는 한계.

그래서 정신적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은밀한 즐거움을 찾아,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시후미는 ‘토오루’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립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고 안주할 수 있는 편안한 안락의자 같은 가정이 있고 배경이 되어주는 남편이 있고 자아를 포기해야 하는 육아가 없는 대신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어리고 젊은 애인이 있으니, 그녀에게 정녕 부족한 것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시후미가 가장 사랑하는 건 토오루나 남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역시 아이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을 했다하더라도 아이가 없다면 그것은 성인의 소꿉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겨야 비로소 ‘현실’은 완성된다.  아마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 수 있으리라.


토오루와 코우지 그리고 시후미.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까?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언젠가 시후미는 그런 말을 했다.

“내세울 만큼 행복하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 행복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라고. p.70


여기까지가 삼 년 전, 두 번째로 「도쿄타워」를 읽고 들었던 생각들이다.

며칠 전, 세 번째로 다시 읽은 「도쿄타워」. 이번엔 ‘시후미와 토오루’ 와 ‘코우지와 시후미의 남편 아사노’가 보였다. 새삼스럽게도 작가가 자신의 삶 어느 한 시점에서 쓴 글이 독자에게는 삶의 여러 시점에 걸쳐 영향을 준다는 게 소설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 인물처럼 그들은 고정되어 있는데, 내 나이가 늘어갈수록 또 환경이 변할수록 그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아이가 없는 부부는 둘 중 하나다. 불임이거나 쇼윈도 부부거나. 삼년 전에 읽었을 때만해도 보이지 않던 시후미의 남편이 이젠 눈에 들어온다. 과하게 쿨한 그의 모습에서 이들이 쇼윈도 부부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아내가 자신 몰래 별장에 누군가를 들인 흔적을 보고도 노여움 대신 피로를 느낀다는 것이, 아내가 젊은 남자와 피아노 공연을 함께 보고 그 남자와 함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그런 짐작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연하든 연상이든 시후미가 원했던 것은 자기 자신만을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남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랜 시간 지켜본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린지도 모른다. 코오루가 진정한 자신의 사랑이라는.


“말했지?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절대 같은 게 아니라고. 누구와 살든, 난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과 살아. 그렇게 마음먹었어.”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건?”

“그럼 너, 우리 집으로 이사 올래?”


그토록 궁금했던 그들의 미래가 「도쿄타워」를 읽은 지 9년 만에 어슴푸레 보였다. 시후미와 코우지는 오랜 기간 신중했던 만큼 함께 살아가겠지. 한 집에서 살든 그렇지 않든.

그리고  육체에 탐닉하는 사랑을 했던 코우지는 아사노의 젊은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고, 코우지의 미래가 시후미의 남편 아사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다. 자신이 뜻하는 대로 살 산다는 것은 쉽게 보이지만 사실은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시후미는 연하의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을 찾는 길이었다면 어쩌면 그것은 용기 일지도 모른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도,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은 지난 세기의 명언이다. 과오를 인정하고 바로 잡는 과정이라면-그것이 불륜으로 비춰질지라도-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없을 것 같다. 이제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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