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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도서]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떠올랐던 이미지가 있다. 하늘이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높고 파란, 건조한 어느 가을 날. 가을 냄새와 낙엽 냄새가 뒤엉킨 인기척 하나 없는 텅 빈 수목원. 문득 문득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바람 속에 섞인 가을 특유의 냄새.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내가 상상속의 그곳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요일 오후의 스포츠 중계처럼 지루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주인공 조연주와 김중위의 뻣뻣한 로맨스 때문이었는지, 민통선 안 수목원이 주요 배경이여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던 조연주는 경기침체의 여파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은 지방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복역 중이었고, 자신만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직장 생활하듯 교회를 드나들며 나름의 삶을 버텨나가고 있었다. 

조연주는 계약직 공무원 선발과정을 거쳐 민통선 안 국립 수목원의 전속 세밀화가로 일하게 되는데,『내 젊은 날의 숲』은 그녀가 민통선 안 수목원에서 전속 세밀화가로 보낸 일 년 간 의 기록이다.


여성인 조연주가 소설을 이끌어가긴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진정한 주인공은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를테면 조연주의 아버지, 김중위의 아버지, 누군가의 아버지인 이나모, 신우의 아버지 안요한, 죽기 전 상추쌈을 먹고 싶어 했던 참전용사 박창수. 이들이 『내 젊은 날의 숲』의 진짜 주인공들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내가 받은 느낌의 답을 찾기 위해, 김훈이 세밀하게 묘사한 풍경과 등장인물들을 곰곰 생각하면서 읽었다.

6.25전쟁 당시 죽음으로써 죽음을 막아서야 했던 이들과 처자식과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 조연주의 아버지. 군인으로 일하다가 계약직 숲 해설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이나모와 이혼 후 자신 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아들 신우를 돌보는 안요한. 그리고 조연주가 세밀화를 그리기 위해 일하던 수목원. 


조연주를 제외한 사내들에게는 다른 시대와 환경이지만 비슷한 이유에서 희생 되어간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사시사철 고요하지만 웅장한 변화를 드러내 보이는 자연을 김훈은 묘사하였고 그 속에 잠시 그 안에서 머물다 가는 인간 생애의 덧없고 나약함, 특히 아비 된 자의 약함을 숨겼다.

대신 조연주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해 드러나는 아비들의 생애에 주목하게 되면서, 저들이야말로 진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답답함을 하소연할 수 있다. 새벽이라도 불쑥불쑥 전화를 걸어 딸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아비는 그렇지 않다. 많은 말을 삼키고, 많은 생각을 삼킨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끝을 내버리는 아비들은 자연과 닮았다. 요란하지 않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낙엽을 만들고 결국엔 모든 걸 버리고 앙상해지는, 숲과 닮았다.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에게 간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충분히 주관적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으며 실감했다. 독자가 확대해석 했더라도 소설의 해석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도 또한 해보았다. 그러니, 나의 해석이 김훈 작가의 의도와 다르다 해도 상관없다고 자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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