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요정이었으면 좋을 텐데. 내가 마술을 부리면 좋겠다.’ 일곱 살 난 딸아이가 요즘 자주 하는 말들이다. 초등 언니들처럼 인라인 스케이트를 잘 타고 싶은데 생각만큼 쉽지 않으니 요정이 되고 싶은 거고(요정 가루만 있으면 금방 언니들처럼 잘 탈 수 있게 될 테니) 한글공부 하기 싫을 때면 마법사가 되면 힘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마법으로 모든 걸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단다. 너무 귀엽고 순수한 생각.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유전인가?
그러고 보면 나도 예전에, 딸아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한참 패스트푸드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치킨이나 햄버거는 특별한 날에 부모님을 졸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는데 유독 식탐이 있던 나는 종종 그런 음식들이 먹고 싶었다.
자주 먹을 순 없고, 먹고 싶기는 하고. 그 때 내가 한 행동은 햄버거며 치킨이 등장하는 광고지를 보며 ‘나와라 얍~’하며 주문을 거는 것, 그리고 그 음식이 내 앞에 나타난다고 상상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 밖에 안 나오는 황당한 행동이지만, 그 시절 내게는 재미난 놀이 중 하나였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그런 놀이대신 좋아하는 오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 엄마를 졸라 매일 머리 모양을 다르게 하는 데에 관심을 쏟았지만.
유치하지만 귀여웠던 행동도 좋아했던 그 오빠도 이제 기억에서 가물가물한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시절 학급 문고에 꽂혀있던 『꿈을 찍는 사진관』은 내가 이만큼 자라고 변하는 동안에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오래된 몇 편의 동화들은 비록 지금은 동심을 잃고 어지간한 일에는 감동하지 않는 무딘 어른인 내가 한 때 요정과 마법을 믿던 순수한 어린 아이였다는 사실을 떠오르게 만든다. 어릴 적 읽던 동화를 다시 읽는 다는 것은 묘한 기쁨과 아련함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개와 고양이가 서로 으르렁 대며 살게 된 이야기인 이정호의 「이상한 연적」, 꽃씨로 전쟁을 벌인 두 나라 이야기를 그린 김성도의 「대포와 꽃씨」, 6.25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와 화가 아저씨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강소천의 「무지개」,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그리운 이들을 만나게 해주는 사진관 이야기인 표제작「꿈을 찍는 사진관」등이 실린 『꿈을 찍는 사진관』은 쓰여 진지 몇 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딸아이에게 자기 전 들려줄 이야깃거리를 구하다가 재회한 책인데 오히려 내가 더 흥분하게 되었다. 따뜻한 봄 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산들바람 맞으며 잔디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다. 요새 유행하는 동화와는 분위기도 주제도 다르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읽히기 좋은 동화들이어서 역시 고전은 시대를 관통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