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와 몇 장의 미리보기 만으로 선택해야하는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할 때는 제 아무리 안목이 탁월하다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소설이든 아이들 책이든 간에.
다행인 사실은 많은 책을 고르고 접하다 보면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직감이 발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거다!’ 싶은 책을 주문하면 (표지와 제목만보고 결정함에도 불구하고) 80%정도는 만족스럽다. 육감에서 하나 더 발전한 칠감 정도 되려나? 하인리히 호프만의 『더벅머리 페터』를 구입한 이유 역시 이런 직감 때문이었다.
책이 도착하고 막상 아이에게 읽어주려고 미리 읽어보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일곱 살 난 아이가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을 뿐더러 잔혹하고 자극적이기까지 해서 아이에게 베드타임 동화로 읽어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갈등했다.
하인리히 호프만, 어쩐지 저자의 이름이 상당히 고전적이다 했다. 그는 1809년 독일 태생으로,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세 살짜리 맏아들에게 선물로 줄 그림책을 찾다가 그것이 하나 같이 교훈적인 내용뿐임을 알게 되고 직접 책을 만들기로 한다.
어른의 눈으로 보기엔 상당히 자극적이고 어떻게 보면 잔혹하기 까지 한데, 아이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던지 31년간 100쇄를 찍었고 영어, 네덜란드어, 덴마크어, 스웨덴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예외는 아이어서, 잔혹한 내용을 걱정했던 나의 생각은 기우였고 오히려 계속해서 읽어달라고 졸라댔다.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못된 짓만 하거나, 불장난을 하거나 흑인을 놀리거나, 엄지손가락을 빤다거나, 가만히 있지 못하는 등 말썽쟁이들이다. 짓궂고 얄미운 그 아이들의 최후는 하나 같이 잔혹하다. 불장난을 하다 타죽거나, 흑인을 놀리다가 더 새까맣게 되거나, 엄지손가락을 빨다가 손가락을 잘리거나. 기겁하는 부모와는 달리 아이는 재밌어한다. 심지어 깔깔대며 배꼽을 잡고 웃는다. 동화책 특유의 권선징악이 지겨웠던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이는 “엄마, 왜 앞에는 죽는 얘기 밖에 안 나와?”하고 묻는다. 깔깔대며 웃으며 읽었어도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나보다. 불장난의 위험성이라든지, 엄지손가락을 빨면 손가락을 잘릴 수도 있다는 등의 현실적인 내용이 오히려 아이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때론 빙빙 돌려 말하는 것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아이 교육에서도 마찬가지 인가보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내가 고른 책을 읽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종종 느끼는 것이 ‘어른’의 시선과 ‘아이’의 시선이 참 다르다는 점이다. 어른이 재미있다고 판단하는 책과 아이의 판단은 일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더벅머리 페터』를 두고 나 혼자 고민했던 것이 어쩌면 부모의 오만함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추천은 하되 선택과 결정은 아이가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바른 선택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