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반듯한 상자에 반짝반짝 빛나는 새 크레파스가 있습니다.
노랑, 빨강, 분홍, 초록, 연두, 황토, 갈색, 파랑, 하늘, 검정, 모두 열 가지 색깔이었지요.
모두들 네모반듯한 상자에 나란히 누워 있는데, 별안간 노랑이가 “이렇게 내내 꼼짝 않고 있기는 싫어”라고 말하며 뛰쳐나가지요.
커다랗고 새하얀 종이를 발견한 노랑이는 나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빨강이와 분홍이를 연이어 부릅니다. 빨강이와 분홍이는 초록이와 연두를, 또 황토와 갈색이를, 파랑이와 하늘이를 이어서 부릅니다. 하얀 도화지는 점점 알록달록 예쁜 그림들로 채워집니다.
그 때 까망이가 다가와 말하죠. “저기, 나는? 나는 무얼 그릴까?”
분명 자신을 부르지 않는 친구들에게 용기 내어 물었을 겁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친구들은 까망이를 끼워주지 않습니다. 예쁘게 그림을 망쳐버릴 것 같아서였죠.
“휴, 왜 나만 이런 색일까?”까망이는 자신의 색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싸우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색으로 그리기에만 열중하다보니 다른 친구들의 그림까지 망쳐버렸기 때문이에요. 알록달록 예뻤던 그림은 엉망진창이 되 버립니다.
그 때 샤프형이 까망이에게 귓속말을 합니다.
소곤소곤소곤.. 드디어 까망이가 나설 때가 되었어요.
아이들은 곧잘 다른 아이와 자신을 비교해봅니다. 어른의 눈에는 창의적인 그림들이 신기하고 예뻐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렇지 않은가봅니다.
옆 친구의 그림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샘내기도 합니다. 그림 뿐 만이 아닙니다. 옷차림에서도, 받아쓰기 시험에도, 놀이터에서 뛰어 놀 때조차 아이들은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면서도 친구들을 의식합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맞는 친구가 생기면 잔인하게도 그렇지 않은 친구를 따돌리기도 하지요. 검정 크레파스를 그림 그리기에 끼워주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때에 따라 자신이 검정 크레파스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예쁜 색깔 크레파스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따돌리는 행동에도 거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샤프형’과 같은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샤프형이 적당한 시점에 돕지 않았다면 까만 크레파스는 끝내 자신의 색을 미워하고 탓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색깔 크레파스들은 계속해서 까만 크레파스를 무시하고 하찮게 생각 했겠지요.
너와 내가 다를 뿐, 누가 맞고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게 어른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빨강, 노랑 뿐 아니라 초록, 황토, 검정 모두 필요하니까요.
『까만 크레파스』는 그래서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동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