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임신을 확인 한 순간, 나는 큰 아이를 더 사랑해주어야겠다는 결심부터 했다. 그러나 입덧에 시달리면서, 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왕복 50분 거리의 직장으로 출퇴근 하면서, 그 마음은 금세 잊혀 졌고 날카로워진 신경 탓을 하며 아이에게 화내고 혼도 내고 윽박지르게 되었다.
그렇게 아홉 달을 채우고 예정보다 일찍 둘째 아이를 낳았다. 회복실에서 나오면서 이번에야말로 두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로 키워보자고, 누가 봐도 다정다감한 엄마가 되어보자고 다짐했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지금, 나는 매일매일 죄책감에 시달리고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큰 아이의 반항에 시달리고 있다. 둘째가 태어난 후로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물론 나의 다짐들도 엉망이 되었다.
둘째가 태어난 후“엄마는 왜 엄마 맘대로 만해?” “ 엄마는 왜 나만 혼내?”라는 말을 달고 사는 큰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막막했다. 가뜩이나 미운 일곱 살, 동생이 태어나니 반항은 더 심해졌고 매일 밤 아이 둘을 재우고 육아서를 뒤적이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론대로 큰 아이를 안아주고 관심 가져 주고 특별한 시간을 가져도 그 때 뿐이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아이의 모난 행동에 매번 좌절하던 참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내 책과 아이 책을 거하게 사들이는데, 구스노키 시게노리 글, 이시이 기요타가 그림의『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는 그 때 우연히 주문하게 된 책이다. 특별히 관심이 있어 주문한 책이 아니라서 배송 된 후에도 바로 아이에게 읽어주지 않고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제목을 읽고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어서 그랬는지,. 큰 아이가 베드타임 동화로 이 책을 골라 왔다.
주인공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사내아이다. 동화는 ‘나는 만날 혼나. 집에서도 혼나고 학교에서 혼나.’라는 아이의 푸념으로 시작된다.
정말 아이는 만날 혼난다. 아이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투성이다. 엄마가 늦게 오는 날 동생을 데리고 놀아줬는데 엄마가 오해하고 혼내고, 친구들에게 등교 길에 잡은 사마귀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는데 혼나고, 점심 급식 당번일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친구에게 특별히 많이 퍼줬을 뿐인데 혼나고, 쉬는 시간에 큰 소리로 노래 불렀다가 혼나고.
정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만날 혼난다.
그래서 아이는, 대나무에 소원을 적어 장식하는 수업 시간에 이렇게 소원을 적어 제출한다. ‘ 혼나지 안케 해주새요’
아이의 소원을 읽고 선생님은 울고, 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나도 울었다. 아이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늘 혼이 났지만, 사실 그건 어른들의 시각 때문이었다. 아이는 크게 잘 못한 것이 없다.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혼자 사랑만 받고 자라던 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던 엄마는 5일이 지나서야 갓난아기를 안고 돌아와서는 아프다며 저리 가서 놀라고 하면서, 동생이 울면 바로 일어나서 안아주니 아이 입장에선 샘도 나고 엄마를 뺏긴 느낌 이었을 거다.
머리로는 큰 아이가 정신적으로 힘들 거란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는 배려하지 못한 내가, 일곱 살이나 되었으니 네가 양보하고 참으라고 주문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엄마에게 혼나면서 아이는 얼마나 억울했을는지.. 뒤늦게 깨달은 엄마의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엄마, 인제 걔 안혼난대? 좋겠다.“
말없이 끝까지 다 듣더니 딸아이는 더 이상 혼나지 않는다는 그 아이가 부럽다고 했다.
어찌나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던지, 그 날 밤 아이를 꼭 껴안아주고 잠들 때 까지 예전처럼 팔베개를 해주었다. 주인공 아이처럼 행복하게 잠들 수 있도록.
내 아이가 더 상처받기 전에, 마음 문을 닫기 전에 이 책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이의 행동이 얄밉다고 느껴질 때마다, 동생에게 샘 부릴 때마다 화내고 윽박지르는 대신, 한 번씩 꺼내 읽고 내 감정을 다스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