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잔혹동화다.
에쿠니 가오리는 상냥한 말투로(3인칭 시점) 독자를 홀려놓고선, 소름 돋는 오싹한 결말을 지어 독자들의 뒤통수를 친다. 낮에는 다정하고 애틋하게 대해주지만, 밤에는 술을 마시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자처럼.
2010년 作 『한낮인데 어두운 방』에는 그녀가 선호하는 타입의 인물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부유한 남편을 둔 작은 새 같이 가녀리고 앙증맞은 여자와 결혼 전과는 다르게 부인에게 무관심한 남자. 그리고 그런 남편을 대신하는-크고 믿음직스럽고 안정감 있는 (sex and the city 의 Mr. Big 처럼)- 제3의 남자. 서로 얽히고설키는 사이에 누군가는 일탈을 하고 누군가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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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소설은 에쿠니 가오리의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주인공이 불륜을 저지르긴 하지만, 쾌락이나 얼토당토않은 사랑 타령이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뭐랄까 계몽적인 느낌이랄까?
“ 여자들이여! 그 나물에 그 밥이니 적당히 하시오” 혹은 “남자들은 다 똑같으니 정신 차려 이 사람아!” 정도?
남편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에 성공했지만 결혼 후에는 누구보다 무관심해진-부인을 밥해주고 청소해주는 도우미 혹은 엄마 정도로 대하는- 남편과 함께 사는 미야코. 그러나 남편이 변했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평온한 나날들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집에서 열린 할로윈데이 파티에서 미국인 존스를 만나게 되면서 평온했던 그녀의 일상은 깨진다. 둘의 관계는 급진전 되고, ‘하느님 혹은 부처님, 혹은 조상님과 남편 히로시’를 동급으로 여기던 미야코는 남편의 자리에 존스를 집어넣고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야코가 남편을 떠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미야코와 존스가 처음 만난 할로윈데이 파티의 주최자라는 것.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미야코는 가장 순수한 사람이면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발판이 되어준 열정적인 사랑은 불륜이라는 색이 덧입혀지고 그토록 평온했던 안락한 순간들은 통째로 날아간다. 미야코는 스스로 안락한 삶을 버린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남편을 떠나고 바깥세상으로 나왔다는 것이 아니다.
존스를 통해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욕망을 느끼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마야코는 생각하지만 자신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야코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건 일탈이었지만, 존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生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으니까.
미야코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지게 될까?
결혼 후 예전과 같은 관심을 미야코에게 주지 않은 남편 히로시나 미야코를 자기 손에 넣게 된 후 더 이상 작은 새같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존스나 결국은 같다.
미야코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을까? 답답하리만큼 올곧은 생활을 하다가 안락함에서 오는 권태감에 잠시 길을 잃었던 게 아닐까?
에쿠니 가오리가 말하는 사랑은 늘 평범하지 않다. 불륜이기도 하고 동성애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 많은 사랑 이야기 중 미야코와 존스의 이야기는 한층 진화된 것 같다. 그녀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도 이전의 작품과는 다른 느낌이다. 불륜을 저지른 미야코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이것 봐. 너희들도 순간의 판단을 잘 못 하면 미야코처럼 되는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한낮인데 어두운 방』을 통해 에쿠니 가오리는 모든 것을 망쳐놓을 수도 있고,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정복 대상을 찾는 남자와 로맨스를 꿈꾸는 여자의 동상이몽을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들 중 가히 최고가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