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거림의 미학을 실천하기에 제주만 한 곳이 없다. 자꾸 비교해서 불안하게 만드는 옆집 엄마도 없고, 대강 먹고 대강 입고 살아도 신경 쓸 사람이 없으니까.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어도 죄책감이 안 생길 만큼 아름다운 바다와 숲길이 있고, 원한다면 나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던 잡초 뽑기 명상도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마음껏 빈둥거리며 한 달 살기. 유혹적이지 않은가?”
라는 말로 저자는 독자를 유혹한다. 배를 타고 지나가는 선원을 향해 유혹의 노래를 부르는 세이렌과 다를 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1세기의 세이렌은 선원을 바다에 빠트리거나 배를 난파시키지 않는다는 것. 제주의 세이렌은 유혹에 빠진 선원들이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겨울여행은 제주시보다 기온이 높은 서귀포가 좋고, 차 없이 여행을 하려면 시내나 시내 근교의 일주도로를 낀 숙소를 예약하는 게 좋다는. 아이들과 놀기 좋은 해수욕장은 아무래도 함덕이며 금능 으뜸원해변은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국적인 정취가 근사한 곳이라던가!
나도 한 동안 제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지냈다. 여름방학이 되면 좀 비싸도 아이 데리고 제주로 가고 말리라. 딸아이에게 할머니의 고향이 이렇게 멋지고 근사한 곳이라고 말해주리라 온갖 계획과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빈둥거리기 위해, 아름다운 바다를 보기 위해 꼭 제주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가까운 서해안에도 좋은 바다가 있고, 울창한 숲이 있는데 굳이 없는 시간 쪼개가며 없는 돈 아껴가며 제주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 하는.
유명 연예인들이 앞 다퉈 제주로 향하면서, 또 이런 종류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제주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면 꼭 그곳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니까.
변산반도의 작은 해수욕장 모항에서도 얼마든지 제주와 같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제주 특유의 아름다움은 인정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너무 한 곳으로 치우쳐 몰리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아이 교육과 맞물려 제주에서 장기 체류하는 것이 또 하나의 유행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