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친구들이 그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아이돌 가수를 만나보고 싶다는 꿈을 꾸는 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 책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사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꾸었다. 한동안은 사고 싶은 책 목록을 빼곡하게 적어둔 수첩을 늘 가지고 다니기도 했는데, 그건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낯부끄러운 욕망의 증거이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결혼 후 집은 자연스럽게 책으로 채워졌다.
바라던 대로 많은 책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만족을 얻은 건 아니다. 나는 또 다른 꿈을 꾼다. 그건 내가 밑줄 그으며 읽은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으면 하는 바람, 그래서 나의 메모 밑에 아이의 메모가 덧붙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나마 전보다는 책에 대한 사랑이 플라토닉해진 셈이다. 다행히 책 읽는 엄마를 보며 자라서 그런지 굳이 읽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잘 찾아 읽는 걸 보면 영영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닌 것 같다.
김청연, 최화진의 『책으로 노는 집』에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쌍둥이 아빠, 책을 쇼핑하는 아빠, 공동 서가를 이루고 있는 네 가정, 퇴직금을 투자해 몇 천권의 책을 마련한 엄마 등, 책과 더불어 사는 아홉 가정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아홉 가정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적어도 부모 한 사람은 보통 이상으로 책을 좋아한다는 점,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기 전에 먼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을 만든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에게 책이란 삶의 한 부분이고 독서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였다.
가장 반가웠던 것은 아홉 가정 중 누구 한 가정도 독서를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독서 또한 사교육의 일부가 된 세상에서 책은 종종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독서만큼은 교육과 무관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청정 지대로 남아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책만큼 좋은 친구는 없기 때문이다. 데발로도 말하지 않았던가.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책과 사귀라고.
책을 읽고 나니 또 다른 꿈을 꾸게 된다. 사춘기를 맞이할 내 딸들과 함께 거실에 배 깔고 누워 과자를 씹으며 연애 소설을 읽는 꿈. 머지않은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아이 앞에서 독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