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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야 형제

[도서] 마미야 형제

에쿠니 가오리 저/신유희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마미야 형제2007년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읽는다. 처음 읽었을 땐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던, 잘 읽히지 않는 소설이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글자 하나하나가 풍경이 되고 살아 움직이는, 굉장한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2007년이나 지금이나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는 마음은 한결같은데 유독 마미야 형제에게만

가혹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 당시엔 에쿠니 가오리다운 소설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에 흔히 등장하는 인물은 여자는 작고 날씬하고 똑똑하고 책을 좋아하거나 부자이면서 불륜을 저지른다. 혹은 작고 날씬하고 똑똑하고 책을 좋아하지만 부자가 아니면서 불륜을 저지른다. 그녀들의 상대가 되는 남자는 덩치가 크고 배려심이 있는 외국인이거나 덩치가 크고 배려심이 많은 부자이거나, 마르고 멋지지만 평범한 어린 남자.

그녀의 소설 속에서는 비슷한 배경과 외향을 가진 인물들이, 그녀가 만들어낸 각기 다른 세계에서 기발한 삶을 살아낸다. 그러나 마미야 형제는 좀 다르다.

하나는 비만이고 하나는 마른, 오타쿠 느낌을 물씬 풍기는, 지하철을 함께 한 시간을 타고 같은 목적지에서 내려도 그다지 외모가 기억날 만하지 않은 평범한 남자들이다.

 

양치도 샴푸도 게을리 하는 법 없고, 심성 고운 마미야 형제이긴 했으나, 실제로 그들과 면식이 있는 여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볼품없는, 어쩐지 기분 나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너저분한, 도대체 그 나이에 형제 둘이서만 사는 것도 이상하고, 몇 푼 아끼자고 매번 슈퍼마켓 저녁 할인을 기다렸다가 장을 보는, 애당초 범주 밖의, 있을 수 없는,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연애 관계로는 발전할 수 없는……남자들이었다.” (p.12)

 

국내에서 출간된 에쿠니 가오리의 모든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써보자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마미야 형제는 내 서가 뒤쪽에서 먼지나 뒤집어쓰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그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에는.

그런데 다시 읽어 보니(그 사이 국내에서 출간된 에쿠니 가오리의 모든 소설, 에세이를 다 읽었고 초기작, 아동 작가로 출발한 이력, 글을 쓰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유년기 등 에쿠니 가오리에 대한 더 많은 프로필을 알게 된 지금!) 이 소설은 에쿠니 가오리다운 판타지이고 동화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양치도 샴푸도 게을리 하는 법 없는 남자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고(우리 집 남자만 그런가?) 그런 남자가 있다 쳐도 슈퍼마켓 저녁 할인을 기다렸다가 장을 보는 남자는 흔치 않은데(그래. 이런 알뜰한 성격을 가진 남자도 있다 치자.) 무엇보다 겨울밤에 어울리는 것이라는 테마를 정하고 형제 둘이서 각자 자신의 책장에서 책을 골라 자정을 넘어서까지 책에 열중하는 남자는 정말 드물다. 희귀 중의 희귀 케이스.

그래서 이 소설은 판타지이고 동화다. 이렇게 선량하고 깔끔한 여성적인 취향을 가지면서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게다가 대단한 독서광인) 남자를 현실에서 찾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서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든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니는 것만큼 불가능하다.

 

변호사였던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키노부와 테츠노부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마미야 형제이다. 양조회사에 다니는 형 아키노부는 유달리 빈상貧相이지만, 정의감이 강하고 아는 것도 많은 상냥하고 차근차근한 성격이다.

학교 직원인 동생 테츠노부는 다양한 향신료를 조합해 카레를 잘 만든다. 어릴 적부터 비만이었지만 덩치와는 다르게 실연당할 때마다 조용히 신칸센을 보러 가는 감성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겨울밤에 어울리는 것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각자 책장에서 골랐다. 신간 서적도 좋아하지만, 이미 읽은, 익히 아는 책을 다시 읽는 것을 둘 다 좋아한다. 난방이 과해 실내 공기가 건조하고, 저마다 책에 열중한 나머지 자정을 넘겨 각자 방으로 돌아갈 무렵에는 죄다 입술이 거슬거슬하게 말라서 잘 자란 한 마디를 하는 데도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p.262)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전체를 놓고 보자면 가장 심심한 작품으로 꼽아도 될 만큼 마미야 형제의 일상을 잔잔한 필체로 그려냈지만, 다시 돌아보면 마미야 형제만큼 매력적인 사람들도 없다. 무엇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남다르다.

그래서 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읽고 나면 에쿠니 가오리도 요시모토 바나나 못지않은 치유의 소설을 쓸 수 있구나 란 생각을 하게 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그런지 유독 따뜻한 음식들이 생각난다. 호빵, 어묵, 핫초코 같은. 마미야 형제는 호빵, 어묵, 핫초코 같은 따뜻함을 주는 소설이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즘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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