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한 번으로 책은 살 수 있겠지만 그곳에 이야기는 없다. 서점으로 향하는 길목의 풍경, 서점을 가득 채운 공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배려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사소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삶을 탐욕스럽게 추구하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점을 찾는지 모른다.”
본문 「들어가며」중에서
알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의 아름다움에 대해. 서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대해, 서점이 머금는 향기에 대해, 풍경에 대해.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책을 사러 서점에 가질 않는다. 클릭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집으로, 그것도 할인 된 가격에 보내주는 온라인 서점을 무시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라면 공감하리라. 그렇다고 오프라인 서점을 지나칠 순 없다. 무생물이 생물을 유혹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은 서점일 테니까. 오프라인 서점에는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새로 살 책을 미리 보기 위해, 그냥 마땅한 이유 없이 들른다.
내가 사는 지역의 중대형 서점은 몰락했다. 대형 체인 서점이 들어오면서 지역을 대표하던 서점도 문을 닫았다. 아직 남아있는 동네 소규모 서점들은 아이들 참고서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로 방향을 틀었다. 나는 참고서를 소모품이라고 생각한다. 서점은 책을 갖추어 놓고 파는 곳이다. 책은 한 번 읽고 교체되는 소모품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고서만 가져다놓은 서점은 서점이 아니라 참고서 가게라고 생각한다. 과일을 파는 과일 가게, 생선을 파는 생선가게처럼.
‘초중고 참고서 전문’이라 붙은 간판이 민망하지만,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사실은 좀 서글프다.
시미즈 레이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점 스무 곳을 저자가 직접 취재하고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일본 출신의 저널리스트로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오가며 문화, 예술, 패션에 관련된 글을 쓰고 영상 제작 일을 한다고 한다. 그녀는 세계 각국의 서점 100여 곳 이상을 취재해 왔다고 하는데, 그 중 스무 곳을 이 책에 실었다.
이미 제목만으로도 설렜는데, 책장을 여는 순간 기가 막혔다. 사진이 정말 기막히게 멋지다.
상상속의 서점들을 실제로 마주하던 순간 전율을 느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그 어떤 책보다 위험한 책이 아닐까 싶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직접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는 감탄사와 신음이 난무했다.
책장을 넘기기 싫었던 이유는 그마저도 아까웠기 때문이다.
책에서 첫 번째로 소개하는 서점은 에게 해의 아틀란티스 북스이다.
그리스 산토리니 섬에 위치하는 이 서점은 눈부시게 밝은 빛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서점이다. 눈부시게 밝은 밖에 있다가 서점 안으로 들어갈 때는 어둑어둑하게 느껴져서 눈이 적응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할 정도라 한다. 사진으로만 봐도 뜨거운 태양의 강렬함과 대비되는 바다의 시원함, 그늘의 청량감이 느껴진다.
이탈리나 밀라노의 디에치 꼬르소 꼬모 북숍은 유니크하고 감각적이다. 높은 책장과 긴 서가를 일반적인 서점의 모습으로 떠올린다면 이 서점을 보고선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책의 종류는 까다롭게 고른 문예지가 몇 십 권 정도 있고 나머지는 사진집이나 예술, 패션, 건축 등 비주얼 서적 중심으로 진열돼 있다.
영국 런던의 돈트 북스는 초록색 벽과 고풍스러운 서가가 어우러져 중후한 분위기를 낸다. 내가 느끼는 전형적으로 이국적 느낌의 서점이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빌라서점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 조명을 밝힌 칠흑의 책장들. 진열된 책이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되어 보인다’ . 그러나 서점 안에서는 정열이 느껴진다. 겉과 속이 다른 매력. 빌라 서점은 상파울루에서도 가장 세련된 지구 자르딘스에 위치한다. 여긴 정말 꼭 가보고 싶다.
미국 오하이의 바츠 북스는 오하이를 대표하는 야외 서점이다. 이곳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으로 지금은 요가 선생이나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우리나라 충청도 어디에 있는 책 많은 집 같은 느낌이었다.
중국 베이징의 키즈 리퍼블릭은 어린이 서점으로 현대적 디자인의 아파트와 레스토랑, 상점 사이에 있는 서점이라고 한다. 입구부터 무지갯빛 색채로 가득한데 깔끔하게 정돈된 서점은 밝고 깨끗하게 보였다. 이런 곳에서 책을 읽고 자랄 아이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저자가 인상 깊었던 서점 세 곳 중 하나라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리레스의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는 1903년 극장으로 지은 건물을 개조한 서점이다. 객석을 모두 떼어내고 서가로 대체되어 갤러리 벽면 전체를 책으로 채웠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출판사이자 서점 체인인 ‘엘 아테네오’의 대표 서점으로 화려하고 아름답다. 금빛 서가에서는 당장이라도 금가루가 쏟아져 내릴 것 같다. 과거 vip들이 앉았을 법한 2층 객석에 소파가 놓여 있어 독자들이 오붓하게 앉아 독서할 수 있다는 것이 압권.
‘아~진짜 끝내주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서점은 일본 도쿄에 위치한 다이칸야마 츠티야 서점이다. 이 서점의 건축은 이탈리아와 영국 출신 건축가가 맡았는데 ‘책과 마주하는 거리감이 마치 내 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한 공간’을 지향했다고 한다. 이 서점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케가이 토모코는 감성과 지성을 연마 하는 ‘어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문장으로는 ‘어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어떻게 꾸며진 곳인지 의아하겠지만 실제 사진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누가 봐도 아이 보다는 성인을 위한 배려가 넘치는 공간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서점은 이 책에 소개되어 있지 않다. 언젠간 우리나라에도 여기에 소개된 서점보다 더 근사한 곳이 문을 열길 바란다.
내가 사는 동네에, 아니 우리나라에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스무 곳의 서점과 같은 서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서점을 유지하는 동네는, 국가는 시민들의 문화적 수준도 높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형 체인 서점만 살아남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