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에 대한 호감은 예전부터 있었다. 단순히 예뻐서가 아니다. 그녀가 가진 특유의 카리스마가 매력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보통의 여배우가 가진 낭창낭창함이 없다.
누군가에게 기대어야만 살 수 있는 타입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물론 방송이나 인터뷰를 통해 보이는 겉모습으로만 보면. 굉장히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녀가 부럽다. 고현정은 참 멋진 여자다.
이 책은 뷰티기자 출신인 진행자 옥양이 고현정과의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에세이가 아니라 ‘뷰티다큐’인가보다.
고현정을 좋아하지만 사실 그녀가 낸 책에는 관심 없었던 게 사실이다. 연예인들이 내는 책의 대부분은 단조로운 세련됨을 추구하니까. 그들이 내는 책을 훑어보면서 ‘우리나라는 연예인이 최고인 것 같네. 이런 책도 쉽게 내고. 일기장에 끼적일만한 이야기도 에세이라고 책으로 나오네.’ 라는 생각 해오던 터였다.
그러나 그녀의 책을 읽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오히려 작년에 나온 고현정의 오키나와 여행 에세이가 궁금해진다. 뭐랄까.. 고현정, 그녀는 참 많은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 같다. 평소 격을 지키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랄까. 어쩌면 그것이 그녀 자신을 지키고 오래도록 스타로 남기 위한 노하우일지도 모르지만.
“성품, 품격, 자격..
제가 유난히 이런 말을 많이 듣는 사람 중 하나일 거예요. 그래서 이 말의 뜻이 정확히 뭘까, 천천히 곱씹어볼 때가 많아요.
가만 보니까 ‘격’이란 건 그런 것 같아요. ‘성격이 좋다’고 할 땐 마음이 가장 깨끗할 때와 가장 더러울 때의 낙폭이 적은 것, ‘품격이 있다’고 할 땐 누가 볼 때와 보지 않을 때의 행동이 거의 일치하는 것, ‘자격이 된다’고 할 땐 사람이 가진 여러 조건 중에서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어울리는 조건과 어울리지 않는 조건의 차이가 그다지 없는 것, 그런 것이겠죠?
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과 가장 못난 곳을 찾았을 때 그 낙차가 적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땐 이런 칭찬을 받아 마땅할 거예요. ‘당신의 아름다움은 격을 갖추었군요.’ ”
(고배우의 말)
소설가 김홍신은 “순간마다 판단을 해야 될 때 자기 정제가 되는 거죠.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더 사랑하고, 더 용서하고, 더 베풀면 그에 맞는 품격이 생겨서 관상도 좋아지고,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며 자기의 품격은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소설가 김홍신이 말한 ‘품격’이 고현정이 말한 ‘품격’과 같은 것임을 안다.
그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품격은 자신이 일궈온 것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성실하다는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그녀는 소박함을 꿈꾸며 산다 할지라도 이미 소박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남편과 지지고 볶으며 살지 않아도 되고,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한 일을 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향하는 시간과 마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여유로움이 규칙과 틀이 되어 그녀 자신을 얽매는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카리스마가 발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중이 원하는 건 사실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하루 24시간을 쓰는 것은 우리와 같지만 결코 엿볼 수 없는 담장 너머의 삶을 사는 그녀의 생활을 엿보는 것. ‘별거 없네, 우리랑 똑같네’ 자위하며 그녀의 세안법을 살짝 따라 해보는 것.
진행자와의 대화, 몇 장의 사진을 통해 그녀가 평소에 책을 읽고 메모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란 걸 단박에 알아봤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만의 세안법을 만들고, 향초를 켜고 향을 즐기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 성실하고 올곧다. 지적이고 카리스마 있고 씩씩해 보인다. 하지만 문득문득 드러나는 쓸쓸함에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키나와 여행기, 아무래도 읽어봐야겠다. 그녀의 생각을 읽고 싶다. 맞장구 치고 싶고, 위안 받고 싶고, 배우고 싶다. 그 다음엔.. 마음속으로 행복하라고, 그냥 무조건 행복하길 바란다고 빌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