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故최민식 작가에게 빠지게 된 계기가 된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은 이 책의 맨 앞장에 등장한다. 이 작품은 최민식 작가가 사진을 시작한 1957년, 용산역 앞에서 찍은 것이다.
‘용산역 부근에는 폭격으로 반쯤 부서진 시커먼 건물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그 중의 한 집 모퉁이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진저리나게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굶주림은 얼마나 구체적이고 위대한 우리의 경험이었던가. 나는 이 아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결국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게 되었다. ’ 최민식 작가의 말이다.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낡은 옷을 걸치고, 맨발로 엉거주춤 앉아 국수를 먹고 있는 사진. 나는 이 작품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단순히 남루한 차림의 어린 아이에게 느끼는 동정, 연민 때문만이 아니었다. 첫눈에 ‘나는 전생에 이 아이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 어릴 적 옆모습과 꼭 닮아 있는 아이의 얼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공교육을 받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는 그저, ‘가난에 대한 체험과 심경을 문자가 아닌 이미지로 기록’한 최민식 선생의 사진을 보고서야 시대의 가난이라는 것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뿐이다.
2013년 노환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선생은 시간이 기억해주지 않는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을 기록했다. ‘열화당 사진문고’에는 그중 선생이 1950년대부터 80년대 사이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 속에는 저마다 유일한 생을 살아내던 사람들의 슬픔과 외로움이 오롯이 담겨 있다.
대부분은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생존해 있는 일부는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57년에 용산역 앞에서 국수를 먹던 여자아이도 살아있다면 지금쯤 환갑을 훌쩍 넘긴 중년 여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부디 그녀의 현재 삶은 따뜻하고 안락하길..
‘저마다의 삶을 부여받은 인간의 실존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는’ 이 사진들은 나를 슬프게 한다. 마음 속 깊이 숨겨진 휴머니즘이 꿈틀댄다. 최민식 작가를 만난 후에 비로소 진심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가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까지 가난한 이들의 사진을 찍어 출판한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