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건 좋아한다.
굉장히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다. 태생적으로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인데다가 왁자지껄하게 모여 즐기는 자리를 싫어하는지라 음주가무를 즐길 기회도 거의 없고, 대단히 정적靜的인 사람이라 기회가 있다 해도 거절하는 게 바로 나다.
사람친화적(?)인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고, 옆에서 누가 말 걸면 귀찮아하는. 후자가 바로 나다.
그래서 나의 인간관계는 좁고 깊다.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내 마음이 동하는 사람에게만 곁을 내주고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는 좁아졌다. 대신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까닭에 상대의 말을 열심히 들어준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깊어졌다.
내 자신이 이런 성향이어서 그런지 인터뷰집을 좋아한다. 직접 만나지 않고도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씨네21의 기자 김혜리의 『진심의 탐닉』을 읽는 동안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의 『김태훈의 편견』도 같이 읽었다. 오전에 ‘진심의 탐닉’을 읽었다면 오후에는 ‘김태훈의 편견’을 읽는 식으로 번갈아가며 읽었다. 그래서 두 권의 책을 모두 읽는데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각각의 스타일이 워낙 달라서 읽는 재미가 대단했다.
김혜리의 ‘진심의 탐닉’은 전문으로 인물을 소개한 다음 Q&A로 문답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이런 방식의 최대 단점은 지루하다는 데 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대화를 녹음해서 받아쓴 형식의 장점은 생동감있지만, Q&A로 문답을 정리하는 형식에는 이것이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글로 대화를 읽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지루한 느낌 받는다. 하지만 저자 김혜리가 설명한대로 독자가 감정을 이입하기는 쉽다는 장점이 있다. 직접 대화에 참여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인터뷰이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게 되고.
김혜리 기자가 서문 형식인 여는 인터뷰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Q&A 형식으로 쓴다고 해서 인터뷰이가 말한 그대로 100% 옮겨지는 건 아닙니다. 사실, 인터뷰를 읽다보면 윤문이 얼마나 개입했을지 궁금해지곤 합니다. 귀로 듣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글로 읽을 때에는 증류가 필요합니다. 활자로 옮겨진 말은 오히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옮겨놓았을 때 실제 뉘앙스와 다른 의미를 파생시키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에도 공정한 조율이 필요합니다. 이는 왜곡하거나 인터뷰이가 하지 않은 멋진 말을 보탠다는 뜻이 아닙니다. 맥락과 리듬, 현장감과 행간의 표정을 훼손하지 않은 채 물기만 짜내서 대화의 부피를 줄이는 것입니다. ”
나는 ‘맥락과 리듬, 현장감과 행간의 표정을 훼손하지 않을 채 물기만 짜내서 대화의 부피를 줄인다’는 표현이 참 좋았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그녀가 말한 뜻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대화가 잘 손질되어져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그녀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22인’(김제동, 유시민, 고현정, 김명민, 정우성, 하정우, 류승범, 김연수 등)의 이야기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