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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도서] 바이올렛

신경숙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 그리고 거대한 빌딩 숲. 잘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혹은 관광객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그 곳에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지 못했던 여자 오산이가 있다. 그녀는 바이올렛처럼 작고 여리고 조용하다.

소설 속의 그녀는 유년기에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인이 되었다.

그녀가 마음을 터놓고 사랑했던 비슷한 처지의 친구 남애는 금세 떠나갔고, 자식보다 자신의 삶을 우선으로 놓았던 엄마는 몇 번의 재혼 끝에 병을 얻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 홀로 보내야했던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의 싹이 틔었을까.

 

신경숙의 글을 읽기 전에는 늘 마음의 준비를 단단해 해야 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감정 때문이다. 그녀의 글들은 거의 매번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내 몸 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우울의 DNA를 끌어당기는 자석 같다.

처음 바이올렛을 읽었던 건 대학 1학년 때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였다.

유난히 맑고 빛이 가득 찼던 가을이었다. 내 기억속의 오산이는, 참 이상하게도 세종문화회관 아래 화원에서 일하는 생기발랄한 여자였다. 그동안 그렇게 알고 지내왔다.

기억의 왜곡. 왜 그랬을까?

15년 만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나는 굉장히 놀랐다.

기억의 왜곡.. 정말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다시 만난 오산이의 인생은 너무나 가여웠고, 내내 마음이 무겁고 슬펐다.

소설 속에서도 오산이는 자주 그녀로 지칭된다. 작가는 서남애, 수애, 최현리라고 콕 찝어 말하면서도 오산이는 오산이라고 부르는 대신, ‘그녀라고 부른다. ‘산이도 아니고 오산이도 아니고 그녀’.

  

불행한 어머니의 인생은 딸에게로 유전이라도 되는 걸까. 돋보이는 외모를 갖았지만 여자로써 불행한 삶을 산 그녀의 어머니처럼, 오산이 또한 그런 삶을 산다.

유년기에 받아야 할 사랑을 채우지 못하면 성인이 된 여자의 사랑은 어그러지기 쉬운가보다.

오산이는 화원으로 표지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작가에게 흠뻑 빠진다. 바탕이 탄탄한 여자라면 사진작가의 호감표시를 가장한 농담을 웃고 넘길 줄 아는 여유가 있겠지만, 마음이 여린 산이는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 준다. 자기 혼자 사랑하고, 생각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모노 드라마 같은 사랑을 한 그녀는 결국 무너져버린다.

 

오산이의 인생을 엿보면서 나는 문득 사옥아, 귀순아 하면서 성을 빼놓고 부르던 마을 안쪽 이씨 아이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궁금해졌다. 이사옥, 이귀순. 이 아이들의 인생은 평범했을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지지고 볶으며 살았을까? 적어도 오산이처럼 신산하진 않았을 테지.

나는 이럴 때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왕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여자로서 사랑 받으면서 행복하게 곱게곱게 살면 참 좋을 텐데. 산이의 외로운 인생이 안타깝고 애처로워서 보듬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설 속에서 그녀는 신경숙처럼 자주 필사를 한다.

한참을 그녀는 잉크가 채워진 만년필을 꼭 쥐고 있다. 노트를 펼친 뒤 너무 만지작거려 나달거리는 책의 문장들을 노트에 옮겨 적기 시작한다.” (본문 중에서)

사족이지만... 나는 신경숙씨가 일부러 표절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출처를 적어두지 않고 필사를 해서, 먼 훗날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믿어주고 싶다. ‘너무 만지작거려 나달거리는 책의 문장들을 노트에 옮겨 적은 것이 신경숙의 자전적 체험이라고 믿어주고 싶다.

그러나 믿는 것과 믿어주고 싶은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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