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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도서]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저/김석희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정상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비정상적이란 것은 또 무엇일까.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평범함과 비범함을 판단하는 것 또한 누구의 몫일까.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높은 가독성이 생각을 방해했다.

앉은자리에서 정신없이 한 권을 뚝딱 읽고, 일단 책을 책상 한 구석에 몰아넣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불쾌함일까, 부끄러움일까. 파악부터 해야 했다.

 

후루쿠라 게이코. 그녀는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죽은 새를 발견했을 때, 울거나 무서워하는 다른 친구들과 달랐다. 새 꼬치구이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닭튀김을 좋아하는 여동생을 떠올리며, 집에 가져가 구워먹자고 말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던 그녀의 어머니는 당황하고, 자신의 어린 딸에게 작고 귀여운 이 새를 땅에 묻어주자고 부드럽게 말한다. 후루쿠라는 결국 어머니 뜻대로 무덤을 만들고 꽃을 바쳤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죽은 새를 위해 살이 있는 그 꽃을 억지로 잡아 뜯어 죽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비슷한, 보통 사람들이 황당하고 걱정스럽게 여기는 일들이 몇 번 반복되자 그녀는 스스로 판단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슬퍼하거나 여러 사람에게 사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본심은 아니므로, 집 밖에서는 가능한 말을 하지 않기로.’ 뿐만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일절 그만두고 다른 사람 흉내를 내거나 누군가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는 것으로.

타인을 흉내 내는 생활을 선택하자 그제야 모두들 안심한다. 보통 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억제하며 조용히 지낸 후루쿠라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행사로 가면극 공연을 보러 갔다가 길을 잃게 되고, 우연히 찾아 들어간 지하철역에서 오픈 예정인 편의점을 발견한다. 편의점 스탭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단지 아르바이트에 흥미가 생겨 지원하고 덜컥 합격한 뒤로부터 무려 서른여섯 살이 될 때 까지 편의점에서

 

그녀는 기억한다. 편의점 오픈 첫 날 교육 받은 대로, 그러니까 정해진 규칙대로 물건을 담고, 정리하고, 계산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세계의 부품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며 책을 한 번 더 읽은 뒤, 머릿속이 처음보다 더 복잡해졌다. 그동안 열린 마음으로, 깨인 정신으로, 보편적인 삶일지언정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이 소설 속의 후루쿠라를 보며 어쩌면 내가 생각해온 그 모든 것들이, 행동들이 아니 내 자신이 편견이라는 수조 안에 홀로 사는 금붕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인하게 부끄러웠다.

그러니까 내가 꼰대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어 댄 그들과 내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고 그 어떤 사람보다 말랑거리는 영혼을 가져 그 어떤 일이 닥치든 고운 뜰채를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밀가루처럼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스르르 흘러가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그녀는 결국 투명한 수조 같은 편의점 안에서, 정해진 규칙 안에서 기계적으로 일한다. 편의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의 손과 발도 편의점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을 의미 있는 생물로 여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불을 밝히는 편의점. 편의점은 이 세상과 꼭 닮아있다. 아니다. 거창하게 세상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일하는 회사도 편의점과 꼭 닮아있으니.

정해진 매뉴얼대로 고객의 편의를 위해 기계적으로 일하고 굳이 왜 이것까지, 생각되는 일도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휴일에도 나와 회사가 시키는 일을 의문을 품지 않고 하고 있으니, 나 또한 편의점 인간이다. 이곳에서 상을 받고 승진을 하며 비로소 나 자신을 의미 있는 생물로 여기니, 후루쿠라와 내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태어난 틀대로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일까. 편의점 직원처럼 기계적으로 일 잘하고 순응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려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인가. 정상은 무엇이고 비정상은 무엇인가.

억지로 틀 안으로 구겨 넣는 것이 정상이고, 자유롭게 크게 두는 것이 비정상인가?

남들과 같이 느끼지 않는다고,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라고 부드럽게 아이를 타이르던 후루쿠라의 부모가 정상이고, 단지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면 단순한 방법이 있다며 케이크를 자르던 작은 칼을 바라보는 후루쿠라가 비정상인가.

 

이 책으로 저자 무라타 사야카는 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온화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크레이지 사야카라는 별명을 가졌고, 독특한 캐릭터로 유명하다고 한다. 검색창을 열어 그녀를 검색해보니 특별해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만 특이한 이력은 현재도 주3회 편의점에 출근하고 있다는 것 정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다. 재미있고 가독성이 높아서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깊이가 있어 자칫하면 크레바스로 빠질 수 있다. 한없이 가볍다가도 한없이 무거울 수 있는 소설이다. 여전히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쉽게 생각을 정리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철저히 자기 검열을 거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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