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책을 읽어도 그 내용을 대부분 잊어버리고, 그런 다음엔 그 책들이 말하고자 한 것보다 우리가 그 중에서 기억하는 내용을 근거로 일종의 가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아주 예전에는 좋아하던 작가였다. 특히 첫번째 에세이집인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읽으면서 재밌어했던 기억은 남아있다. 그리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이 에세이집도 내 기억으로는 첫번째 에세이집과 똑같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세상이 변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독자인 내가 변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전 그 때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대체로 심드렁한 태도로 읽었다.
세상이 변했는데 변하지 못한 작가의 문제인건지 세상에 휩쓸려 변해버린 내가 문제일까? 모두가 공범이고 그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 이것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범인이고, 그가 하는 말이 오답일 가능성이 제일 높은 그런 상황이 제일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