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 적의라는 감정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무기력하게 묶여 서로서로 닮아가는, 개성을 잃어버린 애매한 우리, 우리 일본 학생. 그러나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정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일들에 있어 열중하기에는 너무 젊었든가 너무 늙었다. 나는 스무살이었다. 기묘한 나이였고 완전히 지쳐있었다.
책을 읽던 와중에 작가의 별세 소식을 듣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작가가 스스로 엄선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소설들로 꾸리어진 꽤나 두툼한 소설집이다. 초기에는 약간 구식 스타일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단편 소설 형태의 작품들이, 지체아 아들이 태어난 중기 이후에는 일본식 사소설의 정수라고 불릴만한 소설과 작가 개인의 경험과의 경계가 모호한 그런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작가는 후자의 노선으로 변경하면서 평생 소설을 쓸 수 있는 동력과 모티브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이지만, 내 취향은 전범국이자 패전국으로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 듯 한 일본 사람들의 뒤틀린 심리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전자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