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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도서]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류현재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노부부가 사체로 발견되고 자식 중 한 명이 자수를 하지만, 다른 자식은 범인이 또 다른 자식이라고 주장하여 경찰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김영춘과 이정숙 부부에겐 4남매가 있습니다. 부모의 기대대로 잘 성장해서 교사가 된 맏딸 김인경과 대학병원 의사가 된 장남 김현창, 그리고 아픈 손가락 같은 차녀 김은희와 막내아들 김현기가 그들입니다. 여섯 식구에게 출구 없는 비극이 시작된 건 몇 년 전 어머니 이정숙이 쓰러지고부터입니다. 이혼한 차녀 김은희가 요양원을 거부하는 부모를 모시기 시작했고, 장남과 장녀는 자신들의 사정 때문에 점차 부모와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늘 모진 소리만 듣고 자란 막내는 아예 집을 나가버렸고, 그 뒤로 단란했던 한때를 구가했던 마당 딸린 2층집은 증오와 탄식만 남고 맙니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눈길을 끄는 제목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겐 딱 내 얘기네!”라며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다소 극단적인 제목과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가족을 질기고 지긋지긋한 족쇄로 여기는 사람들은 주변에 의외로 많을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처럼 노부모 간병이 도화선이 되어 온 식구가 서로에게 날선 감정을 폭발시키는 경우도 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로 부부, 부모자식, 형제자매가 어느 한쪽이 항복하기 전에는 절대 끝나지 않을 무자비한 전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가족 간의 갈등은 깨진 유리마냥 봉합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어느 한쪽이 항복해도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게 사실입니다.

 

각 챕터의 제목이 네 명의 자식과 부모의 이름으로 돼있는데서 알 수 있듯 이들에겐 가족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각자의 비밀과 속내가 있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를 향해 내 엄마만 아니었으면, 내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이혼으로 끝낼 수 있는 관계였으면 벌써 몇 번은 했을 거야.”라고, 형제자매를 향해선 핏줄이라는 말은 사기다. 진짜 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은데, 연결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니까.”라고, 또 부모는 자식들을 향해 어떻게 부모가 자식 잘못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어?”라고 토로합니다.

각자 불가피하고 정당한 사연들을 갖고 있는 탓에 모두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 그들은 차라리 남이었다면 봉합이든 결별이든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겠지만, 가족이기에 끝장외엔 달리 선택지가 없습니다. 버릴 수도, 끊을 수도 없는 관계인 탓에 오로지 죽거나 사라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부부의 죽음은 4남매에게는 비극이자 구원입니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지만, 동시에 누군가 확 저질러주길 바랐던 일이기도 합니다. 자수를 한 자식, 결백을 주장하는 자식, 다른 자식을 고발하는 자식이 등장하면서 김영춘 일가의 비극은 부부가 죽은 뒤에도 결코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독자의 반응은 우리보단 낫네.”, “우리랑 똑같아!”, “저러고 어떻게 사냐?” 등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아마도 다소 극단적인 김영춘 일가의 불행을 지켜보며 위안을 받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 같은데, 작가 역시 당신만 이기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당신네 가족만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는 작의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막판에 누가 범인인가?”를 밝히는 미스터리가 전개되긴 하지만, 이 작품의 뼈대는 그리 새롭거나 특별하진 않은 지저분하고 꼴사나운 가족의 전쟁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막장 드라마와는 다른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건 그만큼 생생하고 현실감 있는 설정들 때문입니다. 이미 시작된 고령화 사회, 더욱 팽배해지는 개인주의, 간병살인을 비롯하여 나날이 늘어가는 가족 대상 범죄 등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김영춘 일가의 비극 곳곳에 잘 녹아있다는 뜻입니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나에게 닥치려면 아직 먼 이야기라며 외면하고 싶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예방주사 차원에서라도 생생하고 현실감 가득한 이 이야기를 한번쯤은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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