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의 전래동화와 고전소설을 모티브로 삼은 다섯 편의 장르물이 수록된 ‘모던 테일’은 그동안 많이 봐온 잔혹동화, 즉 우리가 모르는 동화의 뒷이야기 혹은 그 동화를 이리저리 엽기적으로 비틀어 만들어낸 2차 창작물, 아니면 사람들에 의해 순하게 가공되기 전엔 실은 끔찍하고 잔혹했던 오리지널 판본을 독자 앞에 내놓았던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그 모티브 자체를 현대사회의 문제와 결합시킨 독특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모티브로 삼은 서미애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법 제도의 허술함 속에서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가정폭력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신데렐라’를 모티브로 삼은 민지형의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대한 반발심에서 기획됐다는 작가의 고백대로 ‘역 신데렐라 판타지’, 즉 상류계급의 여성에게 간택되기를 욕망하는 추잡한 남성들을 가차없이 공격합니다.
‘숙영낭자전’에서 출발한 전혜진의 ‘수경-나선 미궁 속의 여자들’은 몽환적인 판타지 서사가 눈길을 끈 작품인데, 원작 자체가 막장드라마에 가까운 ‘숙영낭자전’을 현대에 부활시켜 독특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다른 원작들에 비해 다소 낯선 프랑스 동화 ‘당나귀 가죽’을 원전으로 한 박서련의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는 옷의 의미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이자 장년 남성들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힌 작품입니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도 잠깐 언급되는데 ‘당나귀 가죽’ 못잖게 작가의 의도를 잘 드러낸 원전이란 생각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모티브로 2039년의 정치 해프닝을 그린 심너울의 ‘나의 퍼리 대통령님’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누구나 정치를 이야기할 때 편협해질 수밖에 없고, 인지적 편향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작품입니다.
전래동화 혹은 고전소설을 현대사회의 문제와 접목시킨 점에서 예전의 잔혹동화들과는 확실히 결이 다른 작품집입니다. 가정폭력, 신데렐라 판타지, 젠더 이슈, 연쇄살인 등 첨예하거나 비극적인 주제들이 전래동화와 고전소설의 원형과 믹스되면서 좀더 극적이고 현실감 있게 묘사됐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론 서사 자체가 다소 단순하긴 해도 딱 떨어지는 장르물의 미덕을 갖춘 서미애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와 민지형의 ‘신데렐라 프로젝트’가 편하고 재미있게 읽혔고, 박서련의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는 연쇄살인 스릴러를 예술적으로(?) 그려낸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어떤 형태가 됐든 동화를 차용한 장르물은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모던 테일’은 그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것 자체가 돋보였고, 혹시라도 ‘시즌 2’가 출간된다면 꼭 찾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다만,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어떤 작품은 너무 단조롭거나 쉬웠고, 어떤 작품은 너무 애매모호해서 원전과의 연관성조차 떠올리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만일 ‘시즌 2’가 기획된다면 원전의 미덕과 미스터리&스릴러 서사에 충실한, 말하자면 과정과 결과가 좀더 선명한 이야기들이 수록되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