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과 ‘캐리’(스티븐 킹), ‘검은 집’(기시 유스케), ‘노조키메’(미쓰다 신조) 등 오싹함과 짜릿함을 선사하는 장편도 좋아하지만, 때론 짧고 강렬한 단편이야말로 머리를 쭈뼛하게 만드는 호러물에 제격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호러의 농도가 옅어질 수밖에 없고 이것저것 사족들이 따라붙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호러의 정수만 담은 임팩트 있는 몇 십 페이지짜리 단편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마 저만의 경우는 아닐 것입니다.
8편의 단편이 수록된 홍정기의 ‘호러 미스터리 컬렉션’은 다양한 코드들이 잘 버무려진 흥미로운 호러물입니다. 희귀하고 오래된 책에 깃든 악의가 일으킨 피의 참극(‘쓰쿠모가미’),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중독시킨 신비한 약이 빚어낸 지옥도(‘Low Spirit’), 슬럼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미스터리 작가가 겪게 된 영원한 공포(‘슬럼프’), 아들과 함께 조난된 남자에게 닥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조난’), 아이를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일으킨 기괴한 상황(‘떠도는 아이’), 남자의 몸을 숙주로 삼은 정체불명의 생명체 이야기(‘번식’) 등 한여름에 잘 어울리는 다채로운 소재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슬럼프’와 ‘조난’은 단편영화나 단막극에 잘 어울리는 영상미까지 갖추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고, SF 코드를 좀더 가미한다면 이야기의 깊이와 폭이 더 확장될 것으로 기대되는 ‘Low Spirit’과 ‘번식’도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11페이지에 불과하지만 단번의 반전으로 이야기를 뒤집은 ‘미안해’ 역시 왜 짧은 호러물이 더 인상적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입니다.
소재 또는 호러 그 자체에 매몰돼 정작 ‘이야기’엔 공을 덜 들인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 ‘호러 미스터리 컬렉션’은 수록작 대부분이 두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트릭이나 반전의 묘미도 맛볼 수 있어서 한국 호러물 중에는 꽤 좋은 기억으로 남을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다만, 다소 가벼워 보인 문장과 서사가 아쉬웠는데, 전작인 ‘전래 미스터리’에서도 비슷한 점을 느낀 걸 보면 작가 고유의 스타일인 듯 싶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장르물에서 가장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매년 여름 홍정기의 호러물을 기다리게 만들려면 문학성까진 아니어도 좀더 묵직한 문장과 표현으로 무장하기를 조심스레 바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