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북클러버 26기 활동의 첫 책은 『아무튼, 클래식』으로, 우리 모임의 정체성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클래식을 전공하고 클래식 전문 잡지 에디터로 일한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클래식을 대하고 품고 겪어왔는지 그 순간들에 대해 적은 글이다. 전공자이자 애호가이자 생산자이자 연구자로서 작가가 클래식에 대해 어떤 애정과 고민을 갖고 있는지, 어떤 태도로 클래식을 대하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한때 클래식을 전공하고 싶었고 그 업계에 어떤 방식으로든 몸담기를 지망했던 사람으로서, 공감이 되는 구절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클래식의 세계는 넓고도 깊어서 나 스스로를 애호가라고 하기에 나는 아직 너무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책 초반에 클래식의 대중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서울시향이 연주한 '레드벨벳'의 <빨간 맛>이 소개된다. 출근길이었고 지하철 소음이 상당해서 제대로 안 들릴 것을 감안하고 유튜브를 켜 들어 보았는데, 그 소음을 뚫고 전해지는 관현악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오케스트라 선율은 왜 이런 울림을 주는 걸까. 어떻게 이런 울림을 줄 수 있는 걸까. 그 신비로운 울림에 매혹된 사람들이 클래식을 찾고, 소비하고, 사랑하게 되나보다.
글 중간중간에 작가가 좋아하는 음악가, 좋아하는 곡, 그리고 추천하는 연주(특정 연주자나 지휘자의 음악)들이 있어서, 음악들을 따라 들으며 읽느라 읽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다 찾아 듣기는 어려워서 건너뛰고 들은 음악들도 많은데, 책의 마지막에 부록처럼 정리를 해 준 점이 좋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책에는 QR코드가 있는데, 그걸로 작가가 추천한 음악을 모아 둔 유튜브 채널에 접속할 수 있다. (난 일일이 유튜브에 곡명이나 작곡가 이름을 검색해서 찾아 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는지도.)
책 후반에 영화 음악 이야기를 할 때는, 몇 년 전에 본 <스코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극장에서 봤는데, 영화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나는 영화를 보더라도 스토리에 집중하지 그다지 음악에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그러던 내가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영화 음악이 있는데,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OST이다. 앨범을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에 음악이 더욱 잘 들렸던 걸까. 영화가 끝나고도 그 음악이 오래도록 귀에 맴돌아서 영화에 대한 여운도 같이 길게 남았던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은 바흐에서 시작해 말러에서 끝나는, 죽은 작곡가들의 예술"로 여겨진다는 대목이 있다. 그렇지만 현대의 '클래식' 작곡가들은, '현대음악'이라는 장르로 앞의 클래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들리는 음악을 만든다. '클래식'은 일반적으로 고전음악이라고 이해되지만 시대적 구분보다는 장르적 개성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21세기의 대중음악 작곡가가 '클래식'의 화법을 사용하여 만든 곡은 '클래식'이라고 할 수 없는 걸까? 정의하기 나름일 테지만, 작가도 언급했듯이 이미 클래식의 요소들은 재즈, 영화음악, 펑크, 록 등 다양한 장르에 녹아 들어 있다. 우린 어쩌면 이미 클래식이 대중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가 인용된 대목 중, 울컥했던 부분이 있다.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에스티가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안다고 하자 다시아는 "뭐, 적어도 삶은 있네"하고 말한다. 나에게도 음악이 있어 다행이다 하고 생각했다. 음악이 있는 삶이 있어 다행이다.
나에게도 음악이 있어서 다행이다.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청력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 취향을 찾아 헤매야 할 만큼 음악이 풍요롭게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클래식이라는 세계를 접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