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에서 친구들과 만남이 있었고, 예고를 보고 재밌을 것 같다는 친구의 추천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상영시간을 코앞에 둔 예매라서 한 친구는 뒤쪽 좌석에, 나와 한 친구는 앞쪽에 나란히 앉은 채로. 들국화의 노래 그것만이 내 세상이 배경음악으로 깔아주는 스크린의 분위기는 예전의 추억을 되새기기에 충분했다.
조하(이병헌)는 한때 WBC 웰터급 동양 챔피언이었지만, 지금은 오갈 데 없는 한물간 전직 복서다. 우연히, 친구가 잘 가는 단골식당에서 17년 만에 헤어진 엄마 '인숙'(윤여정)과 재회하는데, 역시 모정은 진하디 진한 핏줄은 못 속인다고 한 눈에 조하를 알아본다. 머물 곳도 없던 차에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집으로 따라 갔는데, 듣도 보도 못한 뜻밖의 동생 '진태'(박정민)와 만나게 된다. 난생 처음 본 동생은 자폐가 있으며, 말도 어눌하며 무슨 말이든지 “네~”로 일관하는 초긍정 청년이다. 서번트증후군이 있는 진태는 라면 끓이기, 게임하기,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 신예 배우라는 진태역의 박정민의 연기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오래전 영화 <말아톤>의 조승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엄마 주인숙은 남편의 계속되는 폭력에 더는 참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중학생인 조하를 두고 집을 나가고 다리 밑으로 투신을 하려는 걸 어떤 남자가 구해준다. 지독한 세상살이를 하직하려 했으나, 죽는 것도 마음대로 죽지 못하고 진태를 낳아 어렵사리 살아온 듯하다. 그렇게 버려진 조하는 험난한 삶을 되는대로 살면서 얼마나 가슴에 원망을 쌓으며 살았을까. 한 마디 말마다 곱게 나올 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캐나다에 가기 전까지는 있어야하니까 참기로 마음먹는다.
오, 국민배우 이병헌이 이런 역할도 제법 어울리는구나, 금세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무표정하면서도 내뱉는 말투에 아픔의 상처가 짙게 배어있다. 짧은 대사 톡 쏘는 듯한 조하의 말투는 시원스런 웃음도 선사한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가족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외식을 하며 식당에서 생일이라고 우겨서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은 사람은 아무리 상처를 가슴에 갖고 있어도 가족이라는 틀을 그리워했구나, 하는 마음에 찡한 감동과 함께 눈가가 젖어든다. 함께 와인을 마시고 춤을 추며 엄마에게 웃음을 주는 장면은 고생스럽게 살아온 과거를 보상해 주는 듯 훈훈한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웃다가 찡한 눈물을 반복하며 두 시간이 금세 흘러간다.
지인의 소개로 복싱체육관에서 무하마드 알리의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라는 말로 허세를 부리며 간신히 일자리를 얻기도 하고, 전단지알바에 나서기도 하지만 캐나다에는 갈 수 있을 것인가...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어설픈 가족, 지난 일을 아파하며 아들에게 잘 해주려 하지만, 조하는 그 친절도 불편해 하며 잘 해주지 말라고 한다. 맷집과 주먹으로 살아온 조하에게 모든 것이 불편하고 낯설다. 할 일 없어 주인집 홍마담의 딸 수영이와 진태의 게임에 끼어들지만, 백전백승 게임왕 진태를 이길 수가 없다. 점점 스트레스만 더할 뿐...
하여 남자란 운동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진태를 데리고 나간다.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여전히 바깥세상은 두렵고 적응하기 곤란한 세계다.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진태는 온데간데없고... 조하는 정신이 아찔하다.
정신없이 두리번두리번 찾아 돌아다니는데, 야외 공연용 피아노 앞에 앉아 베토벤의 월광 14번 3악장을 치고 있다!(물론 조하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모여들기 시작하고. 건너편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형 조하, 그 둘의 세계가 묘하게 대립되면서도 무한한 감동을 준다. 그래 각자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엄마에게 매달리고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진태는 피아노만이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이고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는 청년이다.
어느 날 밤 빗속의 교통사고로 알게 된 피아니스트 한가율은 뺑소니 사고를 당해 의족을 하게 되고, 피아노를 중단한 채 아무런 삶의 낙이 없는 채 살고 있다가, 조하, 진태 형제를 만나게 되고... 이들은 어떤 관계로 진행이 될까.
잠깐 동안이나마 가족이 되어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엄마 주인숙은 부산에 내려가 개업식을 도와주어야 한다며, 진태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거듭 하고는 떠난다. 마치 어디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영화를 다 본 후에 알게 되었는데, 진태역의 박정민은 촬영 당시 피아노 왕초보였는데, 이 영화를 위해 6개월 동안 하루 6시간씩 피아노를 배워 이 영화의 대미인 갈라쇼의 장면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칠 정도로 발전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단다. 이러한 노력의 내공이 충분하게 발휘되어 출연진들의 연기가 빛이 나지 않았나 싶다. 각자 겉도는 것 같았던 인물들이 조금씩 화합하게 되고, 주역과 조연이 조화를 이루어가는 점진적인 스토리, 마지막 장면의 두 손을 꼭 맞잡은 형제애는 ‘함께’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새해에 처음 본 영화로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고 개인으로서는 각자가 추구하는 세계를 깊은 관심으로 궁구할 때 더 한층 행복한 삶으로의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