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규 작가는 왜 아돌프 히틀러에 주목했을까? 그 이유는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때문이다. 작가에 의하면 트럼프가 미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여온 행태는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인간 트럼프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히틀러를 지금, 다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트럼프는 2015년 6월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이라고 묘사하는가 하면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 분자로 규정했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의 축재를 독일 대중이 겪는 가난의 원인이라고 규정했다.
트럼프는 멕시코를 비롯한 이민자들은 미국 백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무슬림들은 미국 안보를 해치는 세력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또한 트럼프는 이민자를 막는 국경 장벽 구축과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와 불법 체류자 추방을 주장해왔다. 히틀러는 유대인과 집시들을 대량 추방하거나 600여만 명을 학살했다.
그보다 중요한 유사점은 두 사람의 기반이 대중의 사회ㆍ경제적 불만이고, 지지층이 중하류층이라는 점이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패전에 따른 과도한 배상으로 인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1930년대 전후의 대공황으로 침몰하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경제를, 트럼프는 세계화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커져가는 미국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정치적 기반으로 했다.
히틀러는 대공황 때 긴축으로 일관한 바이마르공화국 정부의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농민, 퇴역군인 중하류층 등을 향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트럼프는 세계화 등으로 중산층에서 탈락하는 미국 중하류 백인층을 겨냥했다. 게다가 지지층 결집을 위해 히틀러가 바이마르공화국의 폭력 타도를 표방했듯이 트럼프는 각종 집회에서 지지층들의 폭력을 선동했다. 트럼프는 세계경제 이탈, 무역적자의 상대국에 대한 공격, 극단적인 자유우대정책의 강행을 통해 히틀러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트럼프가 취임사에서 “미국인을 고용하고, 미국 물건을 사라”고 말한 뒤 전개한 미국 내 일자리 우선 정책은 히틀러가 1933년 총리에 오른 뒤 ‘오타키(Autarky, 폐쇄적 자립경제)’ 정책과 일자리 우선의 완전고용 정책을 펼치고 국제연맹 탈퇴,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 등 수입 통제로 국내 산업 보호 정책을 편 것과 너무나 유사하다.
히틀러가 노동조합 해산과 파업 등을 통해 기업인들에게 더 많은 재량을 주고 고속도로인 아우토반 건설, 올림픽경기장 등 대형 공공건물 건립 등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재무장을 위한 군비 확장 정책을 실시해 군수산업을 팽창시킨 것도 트럼프의 정책들과 유사했다. 그 결과 집권 당시 30%대였던 실업률은 1939년에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로 바뀌는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저자의 견해는 언뜻 1940년대 후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을 지낸 버트럼 그로스의 “친절한 파시즘”을 떠올리게 한다. 그로스는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의 출현을 지켜보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대 기업과 거대정부의 연합’이 나치의 강압적 파시즘과 달리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대중의 생각을 교묘히 관리하는 방식으로 억압적인 지배 세력을 형성하는 신파시즘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2016년 11월 트럼프 당선 이후 『1984』, 『멋진 신세계』,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같은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 작품은 연극,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생산되거나 패러디되었다.
특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원제 It Can‘t Happen Here)』(우리나라에는 2018년 1월 번역)는 미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가 1935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1936년 대선에서 승리한 버즈 윈드립이 군사법을 제정해 언론과 대학을 장악한 후 의회와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등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는 내용이다. 루이스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재혼한 아내 도로시 톰슨에게서 받은 영감 덕분이었다. 아내는 1931년 히틀러를 인터뷰했고, 1934년 미국 언론인으로선 처음으로 나치에 의해 추방되기도 했다. 루이스 역시 히틀러의 틍장을 통해 암울한 미래를 엿보았음에 틀림없다.
박형규 작가에 따르면 트럼프와 히틀러 두 사람 사이의 근본적인 공통점은 기회주의자라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어떤 정견이나 이념, 원칙이나 주의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으며, 둘다 태어나면서부터 기회주의자다.
저자는 지금처럼 경제가 어렵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이런 기회주의자들이 기회를 틈타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1920~1930년대 유럽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프랑코, 그리고 일본에서 우익들이 권력을 잡고 세계 대전을 일으켰듯이 지금 21세기 초반에도 그런 자들이 정권을 쥐면 제3차 세계대전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긴장과 좌우 갈등은 자칫 또 다른 화약고가 될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는 히틀러에게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