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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 평전

[도서] 장일순 평전

김삼웅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올해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꼭 25년이 되는 해다. 고인은 1928년 원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짧게 보낸 학창 시절과 거제도에서 보낸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평생을 원주에서 산 영원한 원주 사람이었다.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선생을 그리워하고 따르는 사람이 줄을 선다. 왜일까? 선생은 지식인으로서 정직함과 엄격성, 불의에 맞서는 장렬함과 자신에 대한 청렬함을 갖춘 데다가,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과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시공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다.

고인은 우리나라 생태·생명운동과 협동운동의 선구자이며 늘 소외되고 핍박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왔다. 그의 사상과 운동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무위당사람들을 만들어 지금도 고인의 사업과 정신을 잇고 있다.

평전을 쓴 김삼웅 선생은 고인의 유족과 무위당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세련되고 능준한 필력으로 고인의 지난한 삶을 생생히 되살려냈다. 책에는 고인의 대표적인 시서화 작품 50여 점과 현대사를 넘나들며 싸우거나 헤쳐나온 고인의 생생한 사진들이 함께 실려 있다.

김삼웅 선생은 고인을 두고 고결하게 살다 갔다고 평한다. 고인은 평생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도덕적인 순수성을 지키며 고결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세속적 출세(가령 노태우 정부 때 국무총리 제안을 받기도 했다)의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류와는 격과 결이 다르게, 오히려 수렁으로 빠지는 쪽을 택했다.

 

서재에 앉아 있는 장일순 선생

 

무위자연(無爲自然)은 노자 사상에서 무엇을 억지로 하지 않으며 스스로 그러한 대로 사는 모습을 일컫는다. 노자 사상에 심취한 장일순 선생은 무위당(無爲堂)’이라는 호를 즐겨 사용했다. 그는 1994522, 67세를 일기로 내 이름으로 되도록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삶을 마감했다.

모름지기 어떤 사람의 평전이 나오는 계기는 그 사람이 남긴 족적을 기록하고 새겨둬 다른 공간에 살거나 혹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를 기리고 배우기 위해서다.

나는 이 책으로 고인을 처음 접했다. 표지에 새겨진 선생의 서글한 눈매와 포근한 인상에 매료돼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400페이지 남짓한 분량에 담긴 고인의 삶과 신념은 이내 나를 깊이 끌어당긴다.

고인은 스스로 책 한권 내지 않았고 그럴듯한 출세에 나서본 적도 없지만 원주 봉산동에 소재한 그의 집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독재정권에 탄압받았던 리영희, 김민기, 김지하, 이철수를 비롯한 지식인·문화예술인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정치인들의 발길도 잦았다.

 

1950년대 중반 교사 시절의 장일순 선생. 선생은 25살이던 해 당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중등과정을 가르치는 성육고등공민학교 교사로 들어갔다. 월급도 받지 않는 자원봉사였다. 선생은 26살에 교사들에 의해 교장으로 추대됐다.

 

선생은 도산 안창호가 평양에 설립했던 민족학교 대성학원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학교 이름을 대성학교로 고치고, 인성교육에 특히 신경을 쓴다는 의미에서 교훈을 참되자로 정했다.

 

1961년 장일순 선생(왼쪽에서 세 번째)은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와 춘천교도소에서 3년간 복역했다. 당시 판사는 검찰 기소장의 복사판이나 다름없는 판결문으로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선생이 지닌 생명 사상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고인에게 감옥 생활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기회의 장소이기도 했다.

 

철창 밖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 있으면 남은 밥을 내놓는단 말이에요. 그러면 새들이 와서 이걸 먹어요. 또 감방에 구멍이 뚫려 드나드는 쥐가 있잖아요. 그런 기색이 있으면 쥐를 향해 밥을 남겨놓는다구. 그러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느냐. 그 새와 그 쥐가 친구가 돼버려. 갈 생각을 않는단 말이야. 항상 밥을 놔두니까. 그러니까 입으로 쮜쮜쮜쮜하면 쥐가 가까이 오고 또 이렇게 바투 오라고 하면 손에도 타고 몸에도 와서 놀기도 하고 이런다고. 쥐가 그렇게 까지 가까이 올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쥐에 대해서 무심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 따뜻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 말하자면 바로 내가 너다하는 거나 다름없거든. 그런데 저 배라먹을 짐승이렇게 되면 쥐가 가까이 안 온다 이거야. 그러니까 생명의 만남이라고 하는 것은 추운 티가 없어야 돼. 장벽이 없어야 돼. (105~106)

 

선생은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늘 밑으로 기는낮은 자세를 몸소 실천했다. 고인은 민중은 삶을 원하지 이론을 원하지 않는다. 간디와 비노바 바베의 실례에서 배워야 한다. 사회변혁의 정열 이외에 영혼 내부의 깊은 자성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식인이랍시고 민중 위에 군림해, 민중을 지도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자리에서 한 번도 뜨지 않고 내리 읽었다. 이렇게 올곧게 살다 간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 그의 삶은 내 삶을 달리 보게 해주고, 내 주위 사람을 달리 생각하게 해주었다. 요즘 같이 어수선한 시대, 한평생 무위(無爲)하고 청정(淸淨)한 삶을 살았던 고인이 더욱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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