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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벤 길마

[도서] 하벤 길마

하벤 길마 저/윤희기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한 장의 사진, 오바마 전 대통령이 키보드로 무슨 말을 입력하면 바로 옆에서 점자로 읽어내는 하벤 길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내 눈길을 오래 끌었다. 이처럼 문자를 점자로 변환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은 하벤 자신이 발명한 것이다.

 

 

2015년 여름, 백악관에서 장애인법 25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 참석한 하벤은 자신이 고안한 대화 장치로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은 자판으로 우리는 당신이 보여 준 리더십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 부친께서도 자랑스럽게 여기실 겁니다.”라고 친 뒤 그녀를 포옹했다.

하벤은 잘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중복 장애를 가졌다. 다만 헬렌 켈러와 달리 희미한 시력과 청력이 있어 지금은 청각이 완전한 사람과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에리트레아계 에티오피아인 아버지와 에리트레아인 어머니 사이의 큰딸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에리트레아에서 쓰는 티그리냐어로 하벤은 긍지’, 길마는 카리스마를 뜻한다. 하벤이 살아온 이야기는 이름 그대로 긍지와 카리스마로 가득 넘친다.

 

▲2015년 장애인법 25주년 기념행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하벤을 안내하며 백안관 그린 룸을 지나가고 있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의 품 안에서 하벤은 줏대 있는 아이로 성장해갔다. 어릴 때부터 장애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장애를 혁신으로 나아갈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살사를 추고, 전기톱을 사용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직접 할 수 있도록 비시각적 기법을 고안하고 익혔다. 수업 중 교사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점자 변환 기능이 있는 컴퓨터에 의지해 열심히 공부했고 우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인생에서 맞이한 큰 전환점은 오리건 주 루이스 앤 클라크 대학에 입학했을 때 찾아왔다. 하벤은 교내 식당 본 아페티에서 큰 좌절을 겪게 된다. 조용한 곳에서 높은 주파수로 이야기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간신히 들을 수 있었으나 소음이 많은 식당에서는 누군가 메뉴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준다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식당 운영자는 고충을 하소연하는 그녀에게 메뉴가 정해지는 대로 이메일로 알려주기로 했으나 메일은 제때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벤은 장애인 관련 법령을 꼼꼼히 살펴보고 식당 운영자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건 제가 어떤 본 아페티에 어떤 편의나 호의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다만 법에 따라 조치를 취해 달라는 요청임을 부디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미국 장애인법 제3장에 따르면, 본 아페티처럼 대중을 수용하는 장소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금지돼 있더군요. 만일 본 아페티가 메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제 요구를 계속 거절하신다면 저로서는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271

 

다음날 식당에서 만난 운영자는 초콜릿 칩 쿠키를 서비스로 내밀면서 앞으로는 일 잘 처리해 나갈것이라고 약속했다. 하벤의 투쟁이 성과를 거두면서 그 뒤 입학한 장애 학생들도 같은 혜택을 누린 것은 물론이다.

하벤은 대학에서 겪은 이 일을 계기로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갖게 돼 로스쿨 진학을 결심했다. 2010학년도 합격 통보를 보내온 여러 로스쿨 가운데 놀랍게도 하버드 대학이 있었다. 100여 년 전 헬렌 켈러의 입학을 거부한 것이 하버드이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가 이루지 못한 꿈을 100년이 지나 아프리카 난민 출신 이민자의 딸, 하벤 길마가 실현한 것이다.

 

▲하버드 로스쿨 졸업식에서 마샤 미노 학장이 하벤 길마에게 졸업장을 수여하고 있다. 9년 동안 함께 한 안내견 맥신은 2018년 4월 하늘나라로 떠났다.

 

하버드 로스쿨은 최초의 중복장애 학생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장학금과 학자금 융자 등 재정 지원은 물론 수화 통역사 2명을 고용해 강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동기들은 필기 노트를 장애지원 사무실에서 점자로 변환해 하벤에게 건네주었다. 하벤은 자신의 노력과 주위의 지원으로 로스쿨의 모둔 과목을 다 통과했고 여러 차례 우등생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벤은 로스쿨 재학 중 친구와 함께 자신에게 특화된 맞춤형 소통수단을 개발했다. 블루투스 자판과 점자 컴퓨터가 연결된 이 시스템은 대화 상대자가 자판으로 하고 싶은 말을 치면 하벤의 컴퓨터 모니터에 점자로 표시되는 기능을 갖췄다.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던 바로 그 장치다.

책은 20184, 안내견 맥신이 하늘나라로 떠나고 새로운 마일로를 맞이하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맥신이 죽자 제 존재가 산산조각 난 것 같았어요. 그 조각들을 다시 하나하나 주워 붙이려고 하니 맨손으로 깨진 유리 조각을 주울 때의 그 느낌, 그런 아픔이 느껴졌어요.”

하나 더. 알래스카 멘들홀 빙하 위 빙벽을 다시 오르고 싶다는 소망까지. 그녀가 일상의 제한과 편견을 떨치며 헤쳐온 삶의 이야기는 진한 감동을 선사하다.

 

▲서밋 앳 시(Summit at Sea)에서 강연하고 있는 모습

 

장애를 지닌 사람도, 이 사회가 그들을 끌어안아 준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요. (중략) 장애는 어느 한 개인이 극복할 문제는 아니에요. 저는 여전히 장애인이고, 여전히 중복장애인이에요. 우리가 대안 기술을 개발하고 우리 사회가 따뜻하게 끌어안아 준다면 장애를 지닌 사람도 성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요.” - 425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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