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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죽음

[도서] 참 괜찮은 죽음

헨리 마시 저/김미선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 책은 지난 2016년 출간된 참 괜찮은 죽음의 개정판이다. 원제는 영국에서 2014년 출간된 Do No Harm(환자를 해치지 말라).

 

언뜻 웰 다잉에 관한 사유를 다룬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영국 최고의 신경외과 전문의 헨리 마시가 뇌와 관련된 수술을 시술하며 쓴 에세이. 저자는 병원에서 환자들과 함께한 드라마 같은 이야기 25편을 1인칭 시점으로 풀었다.

 

생사가 갈린 어느 하루 이야기는 사뭇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뇌와 척수를 감싸는 수막에서 생긴 안장위 수막종으로 시력을 거의 잃어가던 환자는 임신 38주차였다. 안장위 수막종은 시신경 바로 밑에 안장이라고 불리는 공간에 생긴 암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안장위 수막종은 양성이지만 수술 시기를 놓치면 시신경을 압박해서 완전히 실명하고 만다. 다행히 시신경을 감싸고 있던 암덩어리를 모두 제거하고, 아이도 제왕절개술로 구했다. 환자의 시력이 정상으로 돌아와 옆에 놓인 아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해피 엔딩이다.

 

하지만 다음 수술은 그렇지 못했다. 왼쪽 측두엽에 악성 종양이 생긴 50대 여성 환자는 이미 종양이 뇌 안으로 깊이 자라들어가고 있었다. 수술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환자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3개월 정도. 수술 해도 안 해도 수개월 내 사망한다. 일말의 희망을 부여잡고 수술을 받는 것이다. 생명은 그렇게 함부로 놓질 못하는 법. 환자는 수술 후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24시간 내 사망한다.

 


▲저자 헨리 마시(Henry Marsh)

 

저자는 수술을 함께 한 제자에게 말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는 또 그렇지. 죽음이라는 결과가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잖아. 빠른 죽음이 느린 죽음보다 오히려 더 나을 때도 있어.”

 

그는 자신의 아들이 생후 3개월이었을 때 뇌종양으로 인한 급성뇌수종으로 응급 입원한 경험을 들려준다. 의사가 되고나서 고작 넉 달째였다. 그때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유일한 현실은 강렬한 공포, 무력하고 압도적인 사랑에 내몰리는 공포뿐이었다.” 아들은 양성 맥락총유두종으로 밝혀진데다 수술도 성공리에 끝나 목숨을 건졌다.

 

그 나이에 뇌종양이 양성인 경우는 거의 없고, 설사 양성 종양이라도 해도 그렇게 어린아이의 경우는 수술의 위험성이 엄청났다. 저자는 후에 안달복달하고 화를 내는 가족들의 짜증과 분노는 세상 모든 의사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라고 회고한다. “나 자신이 그런 가족의 역할을 했던 경험은 의사로서 받아야 할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윤리적 딜레마에 놓였던 이야기도 들려준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져 두개골 골절로 뇌 손상을 크게 받은 환자를 두고 수술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환자는 수술하면 살기는 하겠지만 영영 불구로 살아야 할지 몰랐다. 저자는 온전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확률이 거의 없다면 과연 수술로 목숨을 살려놓는 것이 그 환자를 위한 길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참 괜찮은 죽음은 무엇일까?

참 괜찮은 죽음의 힌트는 18번째 에피소드에서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20년 전에 발병한 유방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황달도 심하고 죽음을 앞둔 이야기를 말해준다.

 

“현명하게 우리 어머니 말고 과연 누가 이토록 완벽한 죽음을 누릴 수 있을까. 건강하게 장수한 끝에 내 집에서 고통 없이 빠른 기간에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맞이하는 죽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자식과 손자들은 물론 증손자들과 어머니의 가장 오랜 친구 두 분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어머니가 위층에 누워 계시는 동안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서 어머니의 삶을 회상하고, 어머니의 추억에 건배하고, 당시 내 아내가 될 케이트가 만든 저녁 식사를 함께 먹었다. 첫 결혼의 실패를 뒤로하고 나는 몇 달 전 케이트를 만났고 어머니도 매우 기뻐하셨다.” (271쪽)

 

저자는 이렇게 어머니와 맞이한 죽음을 요즘 거의 보기 힘든 참 괜찮은 죽음이라고 단언한다. 마지막 순간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라고 말했다.

 

이렇듯 참 괜찮은 죽음은 환자가 병원이나 호스피스 시설에서 간호 전문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맞이하는 죽음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찾아오는 죽음이다. 이를 위해 삶을 충실하게 영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참 괜찮은 죽음은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이 모두 최선을 다할 때 맞이할 수 있다

 

이외 책에는 뇌수술로 목숨을 건진 사람, 뜻하지 않은 실수로 환자가 불구가 되거나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여담이지만 저명한 인류학자인 케이트(저자의 두 번째 아내)가 간질 발작을 일으켰을 때 두 사람이 혹시 뇌종양이 자라고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이야기도 나온다. 뇌종양의 증상 중에 간질이 있기 때문이다. 의사라고 해서 의사의 가족이라고 해서 중한 질병이 피해 가는 법은 없다고 덧붙인다. 다행히 종양은 없었다.

 

저자는 30년간 뇌 신경외과에 관한 실력을 온축해 왔다. 게다가 동뜬 필력까지 겸비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김미선 번역작가는 어려운 의학용어들을 능준히 잘 풀어냈다.

 

이 모든 것에 힘입어 나는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뇌수술 현장과 환자들의 속사정, 그리고 막전막후 이야기를 실감나게 엿볼 수 있었다. 언젠가 저자의 이야기가 멋들어진 의학드라마로 제작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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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소녀

    사랑지기님^^

    임신 중에 산모의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와닿게 되네요...
    산모도 살리고, 아기도 살고,,,,,

    올려주신 리뷰를 읽으면서 더욱 맘이 아파지는 것 같아요.~
    제 남동생 아기가 빛도 못보고 태어나는 날 하늘나라로 갔거든요..ㅠ,ㅠ,~
    지난 일요일 삼일째 되던 날 조카를 보내주고 왔답니다...
    그래서 사실, 너무 맘이 아프고 슬픈데,,,,
    이렇게 아기가 잘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 우리 불쌍한 조카 생각이 나서 이렇게 제 아픈 사연을 올려드리게 됐네요...

    좋은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편안하고 행복한시간 되세요.~사랑지기님^~^

    2022.08.02 21:4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사랑지기

      아 그런 슬픈 일이 있었군요.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어요?
      아무쪼록 아기가 좋은 곳에서 영면하기를 기원해봅니다. ㅠㅠ

      2022.08.0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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