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이야기 참 반갑다. 자신의 꿈을 찾아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런 사람. 저자 윤혜진 씨는 현업 간호사다. 그녀는 한국에서 간호사로 4여 년간 임상 경력을 쌓은 뒤, 다른 길을 찾아 이국으로 떠났다.
저자는 현재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있는 한 병원의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간 7년 동안의 간호사 생활 동안 자신이 이룬 성과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올해 29살을 맞았다.
책은 저자가 한국과 아부다비 병원에서 일하며 느끼고 배운 것들을 솔직담백하게 쓴 에세이다.
그녀는 “반드시 한국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일을 하리라” 마음을 공글리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진출할 수 있는 곳은 많았지만, 한 블로그의 글을 통해 두바이에 꽂혔다. 일단 결심이 서자 저자는 영어공부와 몇 가지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우선 영어공부는 닥치는 대로 했다.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일반 영어도 필요하고, 환자 상태와 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전문 영어도 익혀야 했다. 영어 팟캐스트와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를 반복해서 보고 마지막에는 외국인 선생님과 실제 대화를 나누기 위해 과외를 했다.
3년제 전문대 졸업을 극복하기 위해 주말마다 수업에 참여해 4년제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을 땄다. 우선 NCLEX와 CCRN.
NCLEX (National Council Licensure Examination)는 미국 간호사 자격시험이다. 우리나라 간호사가 미국 병원에 취업하려면 국내 자격증이 인정되지 않아 NCLEX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의사라면 USMLE (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를 통과해야 한다.
CCRN (Critical Care Registered Nurse)은 우리나라의 중환자 전문간호사와 비슷한 미국 전문간호사 자격증이다. 우리나라도 전문간호사제를 운영하고 있다. 중환자 전문간호사를 비롯하여 가정, 감염관리, 노인, 마취, 보건, 산업, 응급, 정신, 종양, 호스피스, 아동, 임상 등 13종이다. 참고로 'RN'은 간호사를 뜻한다. 의사를 'MD'라고 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전문간호사 자격을 얻으려면 간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3년 이상의 임상 경험을 쌓고 대학원 석사과정(전문간호사 과정) 이상을 수료한 다음,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하는 전문간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한번은 저자가 2차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때였다. 병원은 중환자실 하나에 23개의 침대를 놓고, 다양한 진료과목의 환자를 받았다. 모든 과 환자들을 돌보는 중환자실에서는 내·외과 질환을 다 공부해야 했다.
“그날부터 매일, 내가 봤던 환자의 질환, 치료, 간호를 공부했다. 처방을 다 외워버리고 왜 이러한 처방을 냈는지도 공부했다. 데이가 끝나면 밤 열두 시 넘어서까지 공부를 하고, 이브닝이면 거의 새벽 세 시까지 공부를 하고 잤다. 나이트 출근을 해야 하는 날에는 열두 시에 일어나서 악착같이 공부했다.” - 16~17쪽
이렇듯 현실에 안주하거나 주눅 들지 않는 저자의 면모는 책 구석구석 작차게 담겼다. 파스퇴르가 그랬던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저자의 도전 정신은 나를 한껏 몰입되게 한다.
저자는 애초 두바이 보건부(DHA, Dubai Health Authority)에서 주관하는 간호사 면허시험에 도전했다. 두바이 소재 병원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었다. DHA 간호사자격증은 한국에서도 응시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접수한 다음,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CBT(Computer Based Testing)로 치른다. 미생물학, 기초 간호, 내·외과, 산부인과, 종양학, 약리학 등 7과목에서 주관식 70문항이 출제된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할 수 있다.
DHA eligibility letter를 받은 후 두바이에 있는 병원 여러 곳에 지원서를 보냈지만 응답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두바이가 아닌 아부다비에 있는 병원에 최종 합격했다. 대신 DHA 자격증이 아닌 MOH를 요구했다. 미국 간호사 자격증(NCLEX)이 있으면 면허 전환이 가능했다. 그녀는 이 고비도 훌쩍 뛰어넘었다.
그렇다면 한국과 아부다비에서의 병원 일은 어떻게 다를까? 저자는 한국 병원에서 수 간호사 중심으로 움직이는 권위와 서열 그리고 ‘태움’의 문화 등 여러 부정적인 측면을 경험했다. “한국 병원에서 일할 때를 돌이켜보면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이 사실 더 많다.” 3년제 간호전문대를 졸업한 저자의 이력도 무시할 수 없다. 간호사 사회에서 3년제와 4년제 출신 간에는 엄연한 벽이 존재한다.
아부다비에서는 전혀 달랐다. 수평적인 문화, 의사와 간호사의 동등한 관계 등 한국에서 느꼈던 압박과 갑질은 없었다. “현재 일하는 곳에서는 의사가 간호사보다 높은 신분이라고 여기거나 서열화하지 않는다.” 또한 아부다비에서는 실수에 대해서도 서그러웠다.
“언제나 실수라는 늪에서 숨쉬기 위해 허우적거리며 헤엄쳐온 나는 늪에서 빠져나와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면서 나의 좁은 시야는 점점 넓어지고 갇힌 생각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 85쪽
저자는 29년 동안 변함 없던 실수를 다루는 마음가짐만 바꿨을 뿐인데, 삶이 통째로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실수라도 할라치면 주위 사람들의 냉갈령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아부다비에서는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고, 실수를 통해 더 빨리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단다.
특히 흥미롭게 다가오는 대목은 두 가지. 하나는 무슬림 사람들의 DNR에 대한 인식이었다. DNR은 ‘Do Not Resuscitate’의 약어로, ‘소생술 거부’라는 뜻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위독할 때 심폐소생술(CPR)이나 후두경 삽관 같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한다.
책에 따르면 무슬림 사람들은 ‘죽음’을 선택하고 준비하기보다 신에게 맡긴다. DNR를 설명하면 고개를 저으며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무슬림 사람들은 환자를 살릴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신의 뜻을 어긴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DNR에는 환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심장이 멈추더라도 소생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공격적인 CPR을 하지 않고 편안히 죽음을 맞게 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사람을 살리는 일과 동시에 실질적 평화 속에서 죽음을 안내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다른 하나는 2020년 3월 무렵 아부다비에 여행을 왔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객지에서 남편을 잃은 러시아 부부에 관한 이야기다. 아내는 코로나 유행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이 바이러스가 너무 싫고 미웠다.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당장에라도 밟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뜻하지 않은 비극을 생동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외 책을 읽으며 저자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정성, 환자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온새미로 느낄 수 있다. 환자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전문가로서 저자가 지닌 프로 정신이 아닐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