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보내는 연서. 즉 테이프로 음성을 녹음하여 보내는 연서로 읽혔다. 그러나 책을 읽어갈수록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유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고작 셜리라는 이름을 가졌을 뿐인데, 전혀 모르는 타인을 공항까지 마중나가고 숙소를 제공하는 일이 드물 것 같은데, 이 소설에서는 그것을 해낸다. 그들이 할머니들이라서 그럴까도 싶었지만 원래 할머니들이 인종 차별도 더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낯선 나라 낯선 타국에서 만나는 셜리들의 따뜻함이 이 소설의 다른 이야기인 사랑에 관한 것을 앞섰다. 그러고보면 사랑도 좋지만, 사람들에게 받는 친절과 애정, 유대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셜리들이 없었으면 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므로 그렇다.

설희는 호주 멜버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시티와는 조금 떨어진 곳의 셰어하우스에서 거주하며 그들과 함께 치즈 공장에 다니는 중이다. 일을 쉬는 주말이면 시티에 나가곤 하는데 그 때가 각종 페스티발이 열리는 시즌이었다. 설희라는 발음과 비슷해서 셜리라는 영어식 이름을 쓰는데, 페스티발에서 셜리 클럽 회원들이 걷는 것을 보았다. 자기 이름도 셜리라며 반가워 그들을 따라 들어선 카페에서 S를 만났다. S는 보라색 목소리를 가졌다. 보라색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좋은 셜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색깔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눈을 감고 들으면 똑같이 생긴 쌍둥이 할머니 셜리들을 색깔로 구분할 수 있었다. 예를들면 울루루에서 시스터스 로지를 운영하는 셜리 할머니는 선인장꽃처럼 진한 분홍색이고 쌍둥이 에밀리 할머니는 거기다 노란색을 조금 섞은 듯한 다홍색이라고 여겼다. 사람을 색깔로 구별할 수 있다면 눈을 감고도 그 사람이 하는 말들을 상상하며 색깔의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워킹 홀리데이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하는 데도 그들은 셜리 클럽에 받아 주었다. 비록 임시 회원 자격이지만 셜리들은 셜리를 초대하여 함께 유대를 이어가게 된다. 멜버른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도 셜리 클럽이 존재하고 있어 조만간 그 강력한 힘을 경험하는 셜리다. 다 같은 셜리이기 때문에 셜리의 집에 초대받아 가서, 누구세요? 하면 셜리인데요 라고 대답하면 '어머, 나돈데' 라며 즐겁게 맞이한다는 거다.
소설에서 셜리가 좋아하는 S는 끝까지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저 S 일 뿐이다. 그래서 S가 여자일수도, 남자일수도 있다는 가설들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S가 남자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어쩔 수 없는 사고방식이겠지만 자기 방식대로 읽으면 될 일이고, S가 여자였대도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될 일이다. 낯선 나라에서 타인들에게 마음을 열기란 쉽지 않은 일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행지에서 마음을 열어 그들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사랑에 빠져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오면 질투로 눈이 멀기도 한다. 자기가 가진 비밀들을 다 털어놓지 않아도 사랑에 빠지고 그 인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최근에 읽은 어느 작가의 소설에서도 나타났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은 커다란 자산처럼 느껴졌다. 문화가 달라도 마음을 열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아마 어딘가를 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 소설의 배경인 호주의 멜버른이 더 아련하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셜리처럼 그곳에 있는 상상을 하였다. 셜리가 걷던 길과 셜리의 수많은 고민(엄마와 아빠를 포함한),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 S를 찾아 멀리 떠나는 여정까지. 우리나라에서 있었으면 하지 못했을 것들에 대한 용기를 얻었달까.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멜버른의 셜리들과 나누었던 유대였다. 셜리 클럽의 모토가 Fun, Food, Friend 였듯 셜리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와 아빠를 이해하게 되지 않았던가.
S라는 이니셜로 존재한 그의 탄생 배경도 남다르다.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였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들의 딸인 엄마와 영국인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동양인의 얼굴이 보이기도 한 S를 사랑하게 되며 셜리는 워킹 홀리데이를 연장할 수 있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자신과 마주하기도 한다. 답답했던 가슴이 트이는 순간이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만나고 싶어 했는지를 나는 킬로미터 단위로 환산할 수 있어요. 당연히 그건 내 마음의 스케일과 디테일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아니지만, 공평하게 말하자면, 그건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불가능한 정보잖아요. 사실 이건 힌트에 가까운 거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마음을, 느낌을, 측정 가능한 단위에 맡기는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압도되게 마련이니까. 압도적인 숫자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마음이 그 뒤에 있다는 걸 누구나 상상할 수 있잖아요. (136페이지)
소설은 호주 원주민의 애환을 말하기도 하고,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의 사연,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에 대하여도 말한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에 주눅들지 않고 곧은 시선을 가진 셜리가 마음에 든 이유다. 셜리 모튼의 집의 개러지 세일에서 서로 갖고 싶어 할 만한 물건을 찾아 교환하게 되는데 셜리는 라이방 선글라스를 S는 워크맨을 골랐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SIDE A와 SIDE B로 이루어져 있으며 3인칭 시점과 셜리가 S에게 녹음해 건네는 다정한 속삭임이 번갈아 진행된다. 워크맨의 음악을 듣듯 우리는 작가가 전하는 호주의 풍경을 그리게 된다. 사랑처럼 아름다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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