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학에서 나오키상과 서점대상 수상작들을 챙겨보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나이대가 다른 서점인들이 '그해 가장 많이 팔고 싶은 책'을 투표하여 선정하는 상이 서점대상이라는 건 아마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터. 2020 일본서점대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유랑의 달』은 읽어야 할 책인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부모에게 사랑받았던 가나이 사라사. 아이스크림으로 저녁을 먹을 수도 있고, 아빠가 마시는 술을 만들 줄도 아는, 아이들은 보지 말아야 할 영화도 함께 보는 이 가족은 대낮에 술 마시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러한 가정에서 자란 사라사는 이 모든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아빠와 엄마가 사라사에게서 사라진 후 이모 집에 맡겨졌다. 자유로웠던 가족과는 다른 이모집에서 사라사는 견디기 힘들었다. 공원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들어가곤 했는데 공원 벤치 한쪽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를 가리켜 로리콘(롤리타 콤플렉스)이라 불렀다.

이모의 중학생 아들이 밤마다 사라사의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홉 살의 사라사는 사촌 오빠가 몹시 싫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공원에서 놀다가 친구들과 헤어져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 책을 읽는다. 건너편 벤치에서 책을 읽는 그 젊은 남자와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비가 내리는 줄도 몰랐다. 우산을 씌워준 남자는 집에 가기 싫다는 사라사에게 자기 집에 갈거나고 묻는다. 어쩐지 아빠를 닮은 젊은 남자를 따라 갔다. 사에키 후미의 집에서 사라사는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다. 저녁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되는. 바닥에 엎드려 영화를 마음대로 봐도 되는. 반면 후미는 육아서적에 적힌대로 자라왔다. 그래서 그는 정해진 일과 정해진 음식 들을 먹어야 했다. 사라사가 온 뒤로 그 또한 엄마의 육아서에 적힌 것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후미는 납치범이며 로리콘이고 사라사는 피해 아동이 된다. 무엇이 그들의 유대를 끈끈하게 했는지 아주 나중에야 밝혀지는데 그런 점들은 안타깝다. 두 달을 함께 지낸 후 동물들을 보고 싶다는 사라사의 청에 둘은 동물원으로 향한다. 사라사가 유괴되었을 거라는 뉴스가 전해진 터라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신고를 했다. 후미 또한 그런 상황을 예상했을 것이다. 경찰에게 잡혀가는 후미에게 울며 이름을 부르는 영상은 오래도록 자료로 남아 있었다. 이제 사라사는 보육시설을 거쳐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남자친구와 함께 말이다. 나중에 있을 갈등을 없애기 위해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왜 사라사가 자신의 이름을 바꾸지 않았는지 안타까웠다.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유괴 사건에서 그 이름이 가져올 파장을 예상했어야 했는데 사라사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줄 알았던 것 같다.

문제는 사라사에게 다가온 남자는 그 사실을 빌미로 스스로 괴로워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라사의 마음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혼자서 결혼 결정을 한다든가 하는 것. 더군다나 엄마가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갔다는 상처를 안고 있다는 거다. 폭력은 대물림되는 건지 사라사와 함께 사는 료도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그녀에게 폭력적으로 대한다는 게 문제다.
관계에 대하여 묻는 소설이었다. 꼭 남자 여자만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닌 인간적인 관계. 또한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다룬 소설이었다. 언젠가 「사랑의 모양」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 영화 또한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세상의 틀에 꼭 맞을 필요는 없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법이다. 그럼에도 평균적인 사회적 잣대로 보면 사라사는 후미에 의한 스톡홀름 증후군과 비슷해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내 주변에 그런 일이 생겼다고 했을 때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분명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말이다. 갇혀 있는 자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할 '끔찍한 일을 당했을 거'라는 가정. 아무리 아니라고 소리쳐봐야 소용없었다. 정작 이모의 아들이 자신에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말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잣대에 맞춰 생각하기에 바빴다. 생각해준다는 미명하에 그들이 건네는 작은 말들이 사라사에게는 바늘처럼 찌르는 상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후미가 처한 사정이 나오는데 그 또한 안타깝다. 빨리 알아차렸으면 해겼되었을 일을 놓쳤다. 어쩐지 소설에서만 있을 내용 같다. 그러나 어딘가에서는 후미와 같은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나기라 유(나기라 유우)는 라이트노벨을 주로 썼다고 한다. BL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작품도 꽤 되는 것 같다. 아마 읽어본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유랑의 달』은 작가가 쓴 첫 문예소설임에도 서점대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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