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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도서]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김민정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김민정 시집을 몇 권을 읽었더라. 산문 한 권과 시집 한 권이었다. 짧지만 날카로운 그의 산문이 좋았다. 아마 시는 그 다음이었으리라. 시집을 읽겠다고 구매하다보니 연이어 두 권을 읽었다. 시인에게 다가갔느냐면 글쎄, 다. 김민정의 시를 이해하기란 다소 어려운 일이었다. 난감함 혹은 생소함이라고 해도 될까. 


내가 평소에 읽던 시는 아니었다. 전에 읽었던 시집들은 주로 시인의 감성이 드러나는, 사랑과 그에 대한 마음을 나타낸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김민정의 시는 다소 난해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시를 읽어야 했다. 




방 아랫목에 여자 둘이다

웃는데, 서로의 등짝을 때려가면서다

30분 거리 슈퍼에 가 투게더 한 통을 사서는

아이스크림에 숟가락 3개 꽂아올 때까지

웃는데, 서로의 허벅다리를 꼬집어가면서다

순간 나 터녔어 하며 일어서는 여자 아래

콧물인 줄 알고 문질렀을 때의 코피 같은 피다

너 아직도 하냐? 징글징글도 하다 야

한 여자가 흰 양말을 벗어 쓱쓱 방바닥을 닦으며

웃는데, 피 묻은 두 짝의 그것을 돌돌 말아가면서다

친구다  (15페이지, 「민정엄마 학이엄마」 전문)


딸이 나를 바라보면서 하는 말 같다. 이 시를 읽으면서 김민정 시인은 마음을 감추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나타내는구나 싶다. 때로는 이런 직설적인 시들도 필요하다. 시는 감정을 감춰야 좋다라는 것을 무너뜨린 거 같았다.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를 읽고나니 비로소 시인의 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한번씩 놀란다. 이렇게 표현해도 되나 싶은, 뭔가 조심스러운 것 같은 거. 

아마 남자 시인인 그러한 낱말을 썼다면 외설적일텐데 여자 시인이 써서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 건가. 

내가 아직 옛날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할 때 우리의 입은 늘 한목소리였다 사랑할 때

우리의 손은 늘 한 손깍지였다 그로부터 벙어리장갑

한 짝이 내 것이라 배달되었을 때 나의 두 심장은 박

수 치는 심벌즈처럼 골 때는 콤비였다 이는 내 것

이 아니었으므로 아나 개야, 개나 물어뜯을 놀잇감

준비하느라 오래도록 당신 참 수고하셨겠다, 죽어라

그니까 개 줄라고  (55페이지, 「벙어리 · · · · · · 장갑 전문)


이별에 대한 시 같은데 어쩐지 나는 웃음이 터진다. 이별하고 난 뒤의 물건이나 감정은 참 곤혹스럽다. 둘 사이를 이어주던 물건 하나때문에 괴롭고 힘들기도 하다. 마음이나 물건이나 정리할 때가 필요한 법. 그것에 대한 시 같은데, 개나 주겠다는 그 시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만다. 이런 통쾌함이라니! 시를 계속 읽어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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