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도서]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김민정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작년 이 즈음, 시인의 신작 시집 출간을 앞두고 두 권의 시집을 구매했다. 얇은 시집이라 가방에 가지고 다니며 조금씩 읽으려고 했다. 어쩐지 몇 장을 이어 넘기지 못했다. 아직 나는 시인의 시에 적응중이었다. 열심히 적응하다고 거의 일 년 가까이 되었다. 이제는 더이상 미루지 못해 다시 시집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연이어 두 권의 시집을 읽었더니 시인에게 조금은 적응이 되었다. SNS에서 보이는 그 직설적인 모습과 닮아 있는 시였다. 


나만 이런 느낌을 갖는 게 아니었다. 김민정 시인을 가리켜 '거칠고 직설적이고 극단적' 이라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제목에서부터 약간 외설적인 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인은 직설적이었을 뿐이다. 아무것도 거리낄게 없이 그대로로 표현하는 시인이라고 보였다. 


이번 시집의 화두는 '곡두'다. 곡두란, '눈앞에 없는 사람이나 물건의 모습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래서 시집의 모든 시에는 곡두 숫자가 새겨져 있다. 




······ 얕은 바람에도 잘게 흔들리는 내 마음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거기 담겨서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니까 나 보라고 떠주는 그 한 삽의 마음. 보이는 마음은 써야 하는 마음, 쓰인 마음은 읽어야 하는 마음. 읽힌 마음은 들킨 마음. 들켜진 마음은 번지는 마음. 시는 그렇게 들불처럼 퍼져서 비밀이 안 되어야 하는 마음.  ······  아 젓가락은 왜 자꾸 떨어지고 지랄일까 딴청 피우듯 말하는 나의 마음. 이 마음. 다 만나려고 이별하고 또 이별하려고 만나는 것을 끝끝내 알아버린 나의 마음. 이 마음의 쓰기는 끝끝내 말로는 끝이 안 나서 있는 연필 두고 자꾸만 새 연필 사러 가게 만드는 나의 마음. 이 마음. (36~37페이지, 「네 삽이냐? 내 삽이지! - 곡두 13 」 부문)


처음 읽었을 때는 잘 모르겠더니 다시 읽으니 너무 좋다. 그 모든 직설적이고도 거친 언어가 아닌 마음 그대로를 표현하는 시 였다. 이래서 시를 계속 읽는거지, 하며 혼자 뇌까린다. 시는 한번만 읽어서는 모른다. 두 번 혹은 세 번 읽어야 그제야 조금씩 마음에 들어온다. 몇 번을 읽으면 그저 가슴에 쏙 박힌다. 


······

차분한 차가움의 온도여.

여정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멈춤이래도

너는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신이 갔대도

당신은 당신이 있는 곳으로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내 속의 내가 나는 아니라 할 적에

나는 나일 수 있을까?

사물이 사물 속으로 들어가듯

사물이 사물 속에서 나오듯

감동하지 않고

나는 이제 어 이상

헤아리지도 않는다. (95페이지, 「우리는 그럴 수 있다 - 곡두 33」)


세월을 가늠할 수 있는 건 시어 혹은 문장에서도 나타난다.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시는 좀더 부드러워졌다. 

그럼에도 직설적인 건 여전하다. 

이제 그게 싫지 않다.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솔직함으로 다가온다. 


이래서 시를 계속 읽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와닿는 시.

적응중이었던 시인에게 어느새 적응 완료 상태다. 


사람들과의 대면 교류 대신 책과 씨름하는 비대면의 시대에 그래도 이 시집을 끝까지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다시 또 읽는다면 더 좋아지겠지. 지금보다도 훨씬. 시를 읽는 사람이고픈 지금의 나. 나에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기에 그렇다.


#너의거기는작고나의여기는커서우리들은헤어지는중입니다  #김민정  #문학과지성사  #책  #책추천  #책리뷰  #시  #한국시  #시집  #시집추천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