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에두고 있다는 건 퍽 슬픈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눈을 감아야 하는 일이다. 이상하게 지금보다 젊었을 적에는 생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성장해가는 아이들을 보며 조금 뒤의 삶을 기대하게 되었다. 물론 언젠가 아무 예고없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되도록이면 준비가 되었을때 찾아오면 더욱 좋겠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 내가 젊기에 오래 살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나는 현재 나이든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겠다고 우겨보지만 그것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죽음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 소설이었다. 죽음 뿐만이 아니다. 배우자를 잃었을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를 배웠던 소설이기도 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때로는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다른 새로운 사랑도 하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가족 곁에 머물면서 배우자의 늙어가는 것을, 죽어가는 것을 바라볼 때면 아픈 손가락처럼 고통이 찾아온다. 오래도록 가족을 이루고 살아온 사람들은 그 사람들만의 추억과 아픔이 있는 법이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정 혹은 유대라는 것이 생기므로 그렇다.

이 책을 읽기 전 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한 전작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었다. 올리브 키터리지에 대한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읽었는데 마을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 어쩌면 단편 연작소설처럼 여겨졌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해변에 접한 마을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정작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하나뿐인 아들 크리스토퍼에 대하여 그렇다. 젊음의 치기는 노년에 이르러서야 후회를 남기는 법이다. 올리브가 크리스토퍼에게 다정한 엄마였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에 이르러 후회를 덜할 수도 있을까.
노년의 삶을 살아간다는 건 젊음과 화해하는 시간이기도 하는 것 같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동성연애자라고 이해하지 못하여 몇 년째 연락을 끊고 산다는 거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랑을 다해 키웠다고 여겼지만 아들은 결혼하자마자 멀리 떠나버렸다. 일 년 혹은 삼 년에 한번씩만 겨우 볼 수 있다는 건 부모가 잘못해서일수도 있다. 더이상 부모의 관심을 받고싶지 않아서고 부모를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커 그럴수도 있다. 이러한 관계들은 부모가 병이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주 찾아오게 마련이다. 부모와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어쩐지 서글프다.
마을에도 올리브 키터리지의 역할은 크다. 오래도록 수학교사로 일했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서 수학을 배웠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키터리지 선생님이다. 올리브는 카페에서 혼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요양원에 입원한 사람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간다. 다르게보면 모든 일에 참견하는 할머니로 비춰질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그런 그녀에게 기꺼이 속이야기를 한다.
소설 전반에 걸쳐 죽음이라는 화두가 이어졌다. 『올리브 키터리지』 에서 첫 남편 헨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원에 입원해 있다가 건강이 점점 나빠져 죽어갔다.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혼자 살기 벅차 요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은 한때 배우자를 두고 바람을 피웠고 아픈 상태에서 배우자가 얼마나 의지가 되었는지를 느끼고 있다. 여전히 그들을 그리워한다.
키가 크고 뼈대가 큰 남성적 이미지의 올리브 키터리지와 결혼한 잭 케니슨 또한 때로 죽은 아내 벳시를 그리워한다. 물론 여전히 올리브를 사랑하지만 벳시가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벳시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어도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올리브도 잭 케니슨을 몹시 사랑하지만 때때로 죽은 헨리가 그립다. 헨리와 크리스와 살았던 부지를 지날 때면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 그리운 건 지나온 시간이다. 함께해 온 시간만큼 그리운 것도 없는 법이다.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 ······ 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 (207페이지)
절대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야, 신디. 계속 이어가는 거지. (212페이지)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만 올리브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부류도 있다. 잭이 죽은 후 심장이 멎을 뻔해 노인들이 모여 사는 좁은 아파트에서 어느 부류에도 끼지 못했던 올리브에게서 오늘의 자화상을 본다. 사람들이 얼마나 끼리끼리 어울리고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배척하는지를 모여준 모습에서였다. 부부가 함께 오래 살면서도 각방을 쓰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신속히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사는 사람이 쓰러져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하는 일이 얼마나 슬픈가. 우리는 그걸 고독사라고 부르는데 소설 전반에 걸쳐 아프게 다가왔다. 올리브와 이저벨이 시간을 달리해 서로의 생사 혹은 안부를 확인하는 일이 가슴아팠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 눈 앞에 있지만 그 죽음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두렵다. 평소에는 타인의 일이려니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언젠가 나에게도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올리브가 죽음을 생각하고 놀랍고 두려워했던 것처럼. 사랑받았고 주었던 자신이 살아온 삶을 생각하고 오늘이 행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다시 오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라는 거.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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