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와 기행의 차이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순례의 사전적 의미는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며 방문, 참배하는 것이다. 기행은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는 것이다. 순례와 기행을 한번에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성당이 존재하는 이유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장소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성당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성당을 바라볼 때 건축학적 의미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성당이 가진 경건함이 좋아 저절로 눈을 감게 되는 곳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나는 특별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렸을 적에는 교회에 잠깐 다니기도 했지만 성당이든 절이든 그 장소가 가진 의미가 좋다.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 장소가 가진 느낌을 중요시한다. 모르는 장소에 갔을 때 둘러보는 곳이 절이나 성당이다. 건축학적 시선을 가진 동생들 역할도 있지만 나는 경건함과 간절함을 담은 풍경이나 그 장소를 좋아하는 편이다. 올해 여름, 제전에 갔을때 배론성지를 방문했다. 어떤 장소인지 모르는 상태로 들어갔는데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오래된 건물이 주는 아름다움과 어쩐지 위안을 받는 기분이 먼저 들었다. 배론성지는 천주교 박해시대에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과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는 곳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그곳을 산책하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촛불을 밝혔다.
이처럼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곳이 성당이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총 80 곳의 성당을 여행하며 성당이 가진 이름의 의미, 성인들의 삶과 죽음 등을 말하였다. 가톨릭 신부와 가톨릭 기자가 엮은 책으로 기행의 의미보다는 순례의 의미가 더 큰 여행서적이다. 성당이라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성당에 깃든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어 그 의미가 상당히 깊게 다가온 책이었다. 유럽을 여행할 때 미술관 기행이나 박물관 혹은 서점기행도 좋지만 이처럼 성당 기행을 하는 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겠다. 특히 종교인이라면 더더욱 좋아할 만하겠다. 아울러 기독교의 역사를 따라 움직이는 여행서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환희와 낙관주의가 가득한 피렌체에서 시작하여 세월을 살아낸 성소 나폴리를 거쳐 물 위의 희망 베네치아와 남쪽의 빛 바리, 부활과 안식의 도시 밀라노를 거쳐온 여행길이다.
피렌체하면 메디치 가문이다. 아름다운 문화와 경제적 풍요를 꽃피운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를 다스렸던 가문이다. 로마 은행의 평사원으로 시작해 메디치 은행을 세우는등 모든이들에게 존경받는 가문으로 자리잡았다. 조반니 디 비치 메디치는 자신을 비롯해 후손들이 묻힐 가족묘를 찾았다.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산 로렌초 성당의 신부에게 리모델링을 지원했다. 대신 그 뿐 아니라 후손들까지 성당에 묻힐 수 있는 권리를 조건으로 걸었다. 겉모습은 단순해 보이나 내부는 꽤 아름답다. 저자는 소박한 외관에 어울리는 소박한 품격, 기품이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시에나의 아름다운 도시 산 지미냐노는 성녀 세라피나의 이야기와 함께 전한다. 친구가 세라피나라는 세례명을 사용하고 있어 더 깊게 와닿았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세라피나는 자기 먹을 것을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마을에 찾아온 전염병으로 얼굴과 몸이 추하게 변하여 피부가 썩기 시작했다. 세라피나는 끊임없이 기도하였고 자신의 고통을 영적 성장의 도구로 삼았다.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불치병의 고통 속에 있던 이들이 그녀의 무덤을 찾아 기도한 후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세라피나가 선종한 뒤에 누워있던 침대에서 제비꽃이 피었다는 전설때문에 매년 성녀를 기리는 제비꽃 축제를 거행하고 있다고 한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장소라고 할 수 있겠다.
나폴리 거리 곳곳에는 비잔틴과 아랍의 건축양식, 스페인과 프랑스, 바이킹의 문화가 생생하게 공존하고 있다. 나폴리 자체가 유럽과 아프리카, 북유럽의 거대한 문화 박물관인 셈이다.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구도심에 다닥다닥 들어선 주택가와 상점, 그 속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함에서 수많은 민족이 함께 뒤엉켜 살아가는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느낄 수 있었다. (140페이지)
저자는 우리나라의 사찰과 이탈리아의 수도원 등을 비교하여 설명했다. 중세 수도자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그리스도교는 없었다고 했고 수도원은 유럽 문화의 보고였다 라고 했다. 침묵 안에서 신을 찬미하며 밤낮으로 공공 기도를 바치는 광경을 영화를 통해서도 보아왔다. 폼페이 최후의 날을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 또한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사라진 고대 도시 폼페이를 방문했다. 죽은 모습 그대로 발견된 폼페이는 세계의 종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탈리아의 도시 베네치아로 간다. 베네치아를 설명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항해술과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중국의 대항해가 멈추었던 이야기를 먼저 한다. 넓은 땅을 가진 중국은 바다가 아니어도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었으므로 바다를 통한 무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유럽은 달랐다. 바다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베네치아인들은 살기 위해 갯벌에 말뚝을 박고 집을 지었다.건축 붐이 일었고 성당 건축 붐도 자연히 일었다. 베드로 사도가 나의 아들이라고 칭한 성 마르코의 무덤이 알렉센드리아에 묻혔다. 베네치아의 두 상인이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해 마르코 사도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옮기는데 성공한다. 마르코의 유해가 있는 곳이 산 마르코 대성당이다.
물 위에 세워진 도시 베네치아를 바다의 용이라고 한다면, 과거부터 베네치아의 용의 눈 역할을 해 온게 산타 마리아 델레 살루테 성당이라고 했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베네치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20여만 명이 몰살당했다. 의회는 흑사병 퇴치를 위해 노른자위 땅에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성당을 건축하기로 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기적처럼 흑사병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재앙에서 건져준 성모 마리아를 찬미했고 50년 후 성당이 완공되자 그 이름을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로 정했다.
순례, 관광, 여행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성당이 밀라노에 있다고 말했다. 500년의 신앙 역사를 품고 있는 밀라노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부속 수도원 식당 벽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때문에 여행자들의 대표적인 방문 코스다.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성의가 보관된 토리노의 산 조반니 대성당도 빼놓을 수 없다. 성의를 둘러싼 진위 논쟁이 있음에도 저자는 성의를 보고 흘린 눈물로 인해 새로운 삶을 걷게 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여행은 나그네의 터벅터벅 발걸음이다. 그 발걸음 자락에는 늘 우연한 만남이 겹쳐지게 마련이다. 그 우연의 기쁨 때문에 나그네는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여행은 그 자체로 우연한 만남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할 때마다 우연한 만남의 화살이 어김없이 피부 진피층까지 파고드니 말이다. (394페이지)
직접 발로 뛰어 찾은 80 곳의 성당은 우리를 유럽의 문화와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게 했다. 성경을 다 알지 못하여도 사진에서 보는 건축물 만으로도 아름다웠다. 책 속에서 전하는 성당이 세워진 유래는 우리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염원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로 이루어진 성당을 기행한다는 것은 그들의 간절한 염원들을 마주하는 것과도 같다. 지금의 팬데믹 상황은 페스트가 창궐했던 시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가 간절하게 바랐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 지금의 이 상황도 끝날 것이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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