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말을 더듬었다. 특히 ‘여’로 시작하는 발음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책이라도 읽으라고 하시면 엄청 떨었던 거 같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싶지 않았고, 말을 더듬는다는 게 부끄러웠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특정 단어를 더듬으면 어른들은 천천히 말하라고 했다. 성격이 급해서 그런다고. 천천히 말하는 연습을 열심히 한 까닭일까. 지금은 더듬지 않는다. 천천히 말하고 내가 해야 할 말을 머릿속으로 연습한 까닭인지 그건 분명하지 않다.
말을 더듬는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이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낱말들의 소리가 들려오지만,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다.
소나무의 스―가 입안에 뿌리를 내리며 혀와 뒤엉켜 버려요.
까마귀의 끄―는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붙어요.
달의 드―는 마법처럼 내 입술을 지워버려요.
그저 웅얼거릴 수밖에 없는 아이는 학교에서 맨 뒷자리에 앉는다. 발표가 있는 날에는 말을 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아이가 느꼈을 그 감정이 오래전 내가 겪었던 것처럼 여겨져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발표를 시킬 것이고, 앞으로 나간 아이는 말하려 입을 떼지만 말하고자 하는 낱말을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이들은 아이의 표정이나 마음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저 말하지 못하는 것만 보고 놀릴 것이다.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여긴 아이는 무척 부끄럽고 슬프다.
아이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고, 아이를 잘 아는 아빠는 그런 아이를 보며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함께 산책한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아이에게 말한다.
‘너는 강물처럼 말한다’ 고.
강물은 자기만의 속도로 때로는 소용돌이치고, 물거품을 일으키고, 구비치고, 부딪친다. 그렇게 강물처럼 말하는 것이라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로 보지 않고, 조금 느린 아이, 마음속에 수많은 낱말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다. 아이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조용한 장소를 거닐며 혼자만의 속도로 걷는 아이. 그 아이를 지켜주는 한 마디였다.
강물이 흐르는 풍경을 생각하며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하여 말할 수 있게 된다. 아이처럼 이제 나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 두려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어렸을 때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림 속에서 아이는 편안해 보인다. 흐르는 강물을 느끼는 아이는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책은 어린이를 비롯해 어른들에게도 위로를 준다. 그림을 들여다보며 내용을 짐작하고 잊었던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혹시 그림책을 아이들만 보는 거라고 여기지 않는지. 아주 잠깐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평소에 깨닫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서너 번쯤 다시 읽었다. 읽는 게 아까워 읽을 때마다 더 천천히 읽게 되었다. 그림 속에서 치유를, 아빠의 말에서 따스함을. 우리가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을 삼켜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그림 속 아이는 이제 행복하다. 낱말들의 소리와 함께 깨어나는 아이는 이제 강물처럼 말하게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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