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하상욱을 처음 알게 된 건 내가 즐겨보던 한 TV프로그램에서였다. 세계의 젊은이들의 생각과 이상을 알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꽤 즐겨봤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나온 시인의 얼굴을 보고는 관심을 가졌다. 시인 치고는 젊은 작가고 시인 치고는 꽤 개그맨스러운 외모때문에라도 그의 시가 궁금했다. 또한 출연진들로부터 짧은 그의 시를 듣고는 그의 시가 더 궁금해졌다. 뭔가 명쾌하게 가슴을 친다고 해야할까. 짧은 시에서 절묘한 느낌을 받았다. 짧은 글을 좋아하는 청춘들에게 일명 먹히는 시인 같았다. 그리고 그의 진가를 제대로 느낀 것 또한 역시 한 TV 프로그램의 재방송에서였다. 일명 명절 특집으로 방송된 '못친소' 특집으로 못친소란 못생긴 친구들을 소개합니다라는 말의 준말로 못생기지만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인 치고 못생겼으면서 예능프로그램에서 걸맞는 그의 외모를 보고는 그의 시를 정말 읽어야겠다며 딸이 구입해 둔 시집 『시 밤』을 찾아 읽었다.
글쎄 시에서 가슴을 탁치는 뭔가를 느꼈다. 어쩌면 말장난 같기도 한 그의 시. 말장난 같은데도 마음에 탁 들어오는 감정들을 느꼈다.
"자, 하상욱에게 '시험'이란 뭔가요?"
"저에게 시험이란 '옛사랑' 같아요."
"왜?"
"다시 보면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아, 이걸 시라고 말할 수 있나. 어쩌면 언어유희같은 그의 시. 그럼에도 뭔가 무릎을 탁 치는 뭔가가 느껴지지 않는가. 하상욱의 시집이라고 하지만 시의 제목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몇 줄의 문장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제목도 주어지지 않았고 『시 밤』이란 한 권의 시집일 뿐이지만 그의 시집은 시집이다. 다음 시를 보라.
처음엔
그래서 니가 좋았다.
이제는
그래도 니가 좋더라.
좋~을 때다.
우리.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도 너무 마음에 들잖아. 지금은 사귄지 오래되어, 혹은 함께 산지 오래되어 설렘을 잊은지도 오래되고, 좋다고 느낀지도 오래된 관계에, 처음 좋았던 때, 지금도 좋다고 느낄 때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한 시였다.

다른 사람을 만나려 했는데
닮은 사람만 찾으러 다니네
그런 것 같다.
너 같은데
너 같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 같다.
문득 감정이란 아주 단순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감정이란 것 아주 개인적이라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것. 바로 사랑에 대한 감정이 아닐까. 나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공감하고, 나이가 많으면 자신이 경험한 감정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공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이를 떠난 공감을 할 수 있는 것. 굳이 사랑뿐일까. 우리의 삶 모든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것. 시절을 지나며 혹은 지난 시절을 생각하는 것이 삶의 단면들에 공감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서정성 짙은 풍경 사진과 함께 캘리그라피로 표현된 시에 가만히 시를 음미하는 시간을 갖게한다.
변했네.
변치 않을 거란 마음이.
잊었네.
잊지 못할 거란 생각을.
수많은 것들을 잊고 사는 우리. 우리의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잊고 사는 우리의 참모습을 마주한 것 같은 시들이었다. 하상욱이라는 시인을 왜 좋아하는지 느낄수 있었던 시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