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귀양살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과연 귀양살이던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삶이. 그럼 우린 모두 감옥에 갇혀 있다는 말인가. 인생이라는 감옥 안에 갇혀 유형수로 살아간다는 말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어쩌면 맞는 말이기도 하지 않나. 삶 자체를 감옥으로 보고, 삶이라는 감옥 안에서 귀양살이하는 유형수라는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게 아닌가 싶지만, 한편으로 그 말이 틀리다고 할 수도 없다. 인간에게는 영원한 삶이 없고, 개인적으로 일정기간의 삶이 정해져 있다. 그 기간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귀양살이 하듯, 유형수처럼.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라는 작품을 빌어 인간의 삶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참상을 페스트로 보고 페스트가 일어나게 된 과정, 페스트가 일어 났을때 정부가 대처하는 방식 등을 보인다. 그것들을 보면 현재 우리가 대처하는 모든 것과 닮았다. 그것이 전쟁이든, 바이러스로 일어나는 병이든. 이 부분에서 우리는 메르스가 일어났던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메르스가 발병되었을때 초기에 대처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다. 정부가 안일하게 대처했던 탓이 컸지 않았나. 이와 마찬가지로 소설에서도 정부측은 사람들이 고열과 발진으로 죽는 사람이 많아지자 페스트라는 걸 알면서도 민간인들에게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페스트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 강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페스트가 시민들에게 가장 먼저 가져다 준 것을 귀양살이라고 표현했다. 페스트가 발병된 후 시는 오랑을 통제했다. 이로서 오랑 시민들은 감금 상태가 되었는데, 이는 오랑 시민 뿐만 아니라 취재차 다니러 온 신문 기자나 여행자도 마찬가지였다. 오랑 시로 들어온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반면 오랑 밖을 다니러 간 사람들도 오랑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저절로 감금 상태가 되었는데 이는 전쟁과도 비슷한 양상을 띈다. 전쟁이나 페스트가 발병했을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게 된다. 이 이별은 기약이 없다. 과거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으로 이별의 시간들을 버텨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는 이별의 고통은 오랑 시에 들어온 사람이나 오랑 시 밖으로 나간 사람이나 비슷하다.
용기라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제 나는 인간이 위대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만약 그 인간이 위대한 감정을 품을 수 없다면 나는 그 인간에 대해서 흥미가 없습니다. (215페이지)

페스트가 발병했을때 이별과 연결된 다른 하나는 죽음에 대한 것이다. 페스트에 걸려서 죽은 사람이 늘어난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경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없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고통.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죽음앞에서 물러나게 하게 노력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성인이 죽은 것도 슬픈데, 어린아이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하는 고통은 크다.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그러나 페스트 환자 노릇을 그만하려고 애쓰는 몇몇 사람들이, 죽음 이외에는 그들을 해방해 줄 것 같지 않은 극도의 피로를 체험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329~330페이지)
페스트 환자들을 치료했던 리유, 여행자인듯 보였던 타루와의 우정과 그의 죽음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리유는 타루와의 우정을 기억했고, 그와의 우정이 추억이 되리라는 것. 그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페스트로 인해 한 친구를 알았고 그와의 우정을 이어갔고, 이제 그의 죽음을 경험했다. 페스트가 남긴 것은 페스트를 겪은 모든 이들의 고통이었으며 또한 새로운 관계의 발전을 주는 계기도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왔고,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보고 싶어했으며, 이별해 있음으로 인해 그 감정이 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많은 죽음을 본 사람에게는 죽음이 의미없는 것임을 알기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삶은 우리 모든 감정들을 지배한다. 만남과 이별, 이별과 죽음 또는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것. 미래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캄캄한 벽 뒤에 있는 것 같지만,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 벽 너머의 세계로 옮겨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